지난 9일 새로 취임한 전국 일선의 신임 법원장들이 취임사를 통해 헌정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 사태 및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파문 등이 겹친 현 국면을 ‘사법부의 위기’로 규정하고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하락하는 현 상황을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한목소리로 드러낸 셈이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향후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찬돈(사법연수원 16기) 신임 대구고법원장은 9일 취임식에서 “초유의 법관 탄핵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로 상상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국민과 언론의 준엄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우진(19기) 울산지법원장도 취임사에서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수습하려고 하기보단, 힘들더라도 사법부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법부가 당면한 현실을 생각하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추락한 국민 신뢰를 다시 얻으려면 ‘땜질식 처방’ ‘일회성 사과’가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특히 이균용(16기) 대전고법원장은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위기 의식을 표출했다. 이 고법원장은 “법원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등 재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 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정치권력이든, 여론몰이꾼이든, 내부로부터의 간섭이든, 부당한 영향에 대해 의연한 자세로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것만이 법의 지배를 실현할 수 있다는 소신으로 용기 있는 사법부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른 법원장들의 취임사에서도 최근 상황에 대한 위기감은 한결같이 반영돼 있었다. 김광태(15기) 서울고법원장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게 우리 모두의 가장 큰 과제”라고 밝혔고, 성지용(18기) 서울중앙지법원장 역시 “최근 법원 안팎에서 벌어진 여러 일로 국민들께서 법원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신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신임 법원장들의 취임사는 그동안 법원이 위기 국면에 처할 때마다 고위 법관들이 내놓았던 발언과 대체로 유사하지만, 표현과 강도의 수위가 좀 더 높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법관 탄핵 발언’이 사실로 드러나고 ‘거짓 해명’ 논란까지 더해진 지난 4일 두 차례의 사과 입장을 표명한 이후, 현재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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