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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해방군의 패배

입력
2021.02.1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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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중국-베트남 전쟁

해상 영토분쟁이 치열하던 2016년 7월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 모인 베트남인들의 반중시위. AP 연합뉴스

해상 영토분쟁이 치열하던 2016년 7월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 모인 베트남인들의 반중시위. AP 연합뉴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배와 2차대전 일제 침략을 겪으면서도 독립운동과 게릴라전으로 저항을 멈춘 적 없고, 세계 열강과의 잇단 전쟁에서도 모두 승리한 드문 국가다. 베트남 독립전쟁이라 불리는 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1954)에서 프랑스를 제압했고, 미국 등 동맹국과의 베트남전쟁을 포함한 2차 인도차이나 전쟁(1955~1975)에서도 승리해 통일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1979년 2월 17일부터 한 달간 치른 중국과의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승전국도 사실상 베트남이었다. 중국 역시 승리를 선언했지만, 막대한 손실만 입고 빈손으로 도망치듯 철수했다.

미국과의 전쟁 당시 중국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 중국의 침탈에 시달려온 베트남인들의 대중(對中) 감정은 좋지 않았다. 1976년 캄보디아 친중 정권인 크메르 루주의 공포정치로 베트남계 주민 박해가 이어지자 베트남은 1979년 1월 캄보디아를 침공, 헹 삼린 친베트남 정권을 수립했다. 2월의 중국·베트남전쟁, 즉 덩샤오핑의 침공은 캄보디아 탈환 및 친중정권 복원을 위한 거였다. 주력군이 캄보디아에 묶여 있던 상황이었지만 베트남의 백전노장 민병대는 정규군에 필적하는 전투력으로 30만 중국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중국군은 북부 여러 도시를 장악하고 하노이 외곽까지 진출했지만, 베트남 주력군이 3월 전선에 속속 투입되자 '베트남에 대한 군사적 징벌을 완료했다'고 선언하며 철군을 시작했다. 사실상 베트남군의 추격에 퇴각한 거였다. 양측이 주장하는 전쟁 피해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양국은 베트남이 '도이모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1980년대 말까지 영토 및 영해권을 두고 산발적인 국경 분쟁을 치렀고, 1990년 비밀 정상회담을 거쳐 1991년 관계를 정상화한 뒤 1999년 국경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남중국해를 향한 중국의 패권적 팽창주의는 베트남 필리핀 브루나이 등 아세안5개국과 심한 갈등을 빚어 왔고, 미국은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의 뒤를 받쳐 주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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