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페론주의자서 신자유주의자로 변신
초인플레 진정시켰지만 부채 위기 씨 뿌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1990년대 자국 경제를 롤러코스터에 태운 카를로스 사울 메넴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은 최근 건강이 나빠진 메넴 전 대통령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요로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고 전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유족에게 애도를 표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1989~1999년 집권한 고인은 위기에 놓인 자국 경제를 회복시켰다 다시 나락에 빠뜨린 인물이다. 1930년 7월 시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변호사로 성장한 그는 페론주의당에 합류해 1950년대에 일찌감치 정계에 입문했고 40대 때인 1973~1976년 라리오하 주지사를 지냈다. 1976년 군부 쿠데타 이후 5년간 정치범으로 수감됐다 석방된 뒤 다시 라리오하 주지사를 지냈고 1989년 대선에서 페론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좌파 페론주의자를 자처하던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국영 기업 민영화를 단행했고, 가격 통제 정책 등을 폐기했으며, 외국 투자 유치에 힘썼다. 달러 대비 페소화 환율을 1대 1로 고정하는 페그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군사 정권부터 누적된 대규모 외채와 초(超)인플레이션으로 빈사 상태였던 아르헨티나 경제를 살려내고 연 5,000%에 육박하던 물가상승률을 1993년 한자릿수로 안정시켰다.
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단절됐던 영국과의 국교도 되살렸다.
경제 안정 등 성과에 힘입어 재선에도 성공했지만 집권 후반 들어 급격한 신자유주의 도입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실업률이 치솟았으며, 외채는 계속 불어났다.
물가 안정에 기여한 달러화 페그제가 이번에는 재앙을 불렀다. 1999년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폭락했지만 평가절하를 할 수 없던 아르헨티나의 제품들은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국제수지가 막대한 적자로 돌아섰다.
고인 집권 후반부터 심화한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는 2001년 대규모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이어졌다. 메넴 전 대통령이 부채 위기의 씨앗을 뿌렸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집권 말기 횡령 등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고 불법 무기 수출 혐의도 받았다.
1995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한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났다. 2003년 대선에 출마했다 결선에서 낙선했고, 2005년부터 상원의원을 지내 오고 있었다.
독특한 구레나룻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고인은 사생활로도 유명했다. 2001년 70세의 나이에 미스 유니버스 출신 35세 칠레 여성과 재혼했다 10년 후 이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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