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인 이상 모임 금지에, '온라인 차례' 착상
의성군, 객지 자녀가 고향 부모에게 영상편지 전달
퇴계종택, 지난달 불천위 제사 화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가 설 연휴까지 이어지면서 '온라인 화상 차례'가 신풍속도로 급부상하고 있다. 노트북컴퓨터나 휴대폰만 있으면 서울과 고향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가족이 한 화면에서 만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서울에 사는 김정현(25)씨 가족은 작년 추석에 이어 이번 설 명절에도 큰집이 있는 대구 귀성을 포기했다. 3차 대유행을 설 전 일찌감치 꺾지 못한 정부도 ‘만남보다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설’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면 어디서 감염될지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과 대구, 경북 영덕, 미국, 미얀마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김씨 가족은 이번 설에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활용해 '언택트 화상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그는 “2년 전부터 미얀마에서 일하는 누나도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군부 쿠데타로 인터넷 연결이 여의치 않지만, 잠깐만이라도 온라인으로 차례도 지내고 세배를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 가족이 화상으로나마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10년 만이다.
비록 온라인 화상 차례지만 오랜만에 가족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는 김씨도 마찬가지. 그는 "미리 프로그램을 시험해 설날 아침에 화상 차례와 세배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이 같은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달 20일 퇴계 이황 선생 불천위 제사도 450년 만에 온라인 화상시스템으로 거행됐다. 당시 경북 안동의 퇴계종택 추월한수정에서 열린 제사에는 이근필 종손 등 소수만 참석했고, 친척과 유림 등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제사를 지키며 노트북 제사상에 절을 하기도 했다.
가족간의 화상 회동, 화상 차례가 신풍속이라면, 온라인 화상시스템을 통한 영상편지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경북 의성군은 최근 출향 자녀들이 고향 부모에게 영상편지를 띄우도록 했는데, 군 관계자는 “영상메세지를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권도연(32)씨는 군의 도움으로 부모님께 짧은 영상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이 더 힘드셨을 부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장가갈 만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그는 “직접 만나 인사를 드려도 좋았겠지만,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인사드리고 나니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영상편지는 작년 추석 때 이곳 주민들이 객지의 아들딸에게 보낸 영상편지에 대한 답신 형식으로 이뤄졌다.
인터넷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이 연결된 세상이다 보니, 영상편지는 해외에서도 날아들었다. 의성 점곡면에 거주하다 2년 전 호주로 떠난 김정훈씨는 "한국에 들어가서 얼굴을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며 "올해는 꼭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호주는 신종 코로나로 작년 3월 국경을 사실상 폐쇄해 놓고 있다.
2006년부터 의성에 살고 있는 딘티 타오(37)씨도 베트남의 부모님으로부터 영상 하나를 받았다.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지만 올해는 꼭 만날 수 있기를!" 이 영상편지에는 의성 출신 양궁 국가대표 장혜진 선수와 의성군청 씨름단 박정우 선수, 의성경찰서 경찰관과 의성소방서 소방관들이 동참해 의미를 더하는가 하면, 먼 땅에 딸을 보내놓고 있는 고향 부모님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했다.
대구에 사는 남준구(32)씨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직장이나 모임에서 다양하게 이용되는 온라인 화상시스템이 영역을 넓혀 차례에까지 활용되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화상 차례를 하기는 하지만 하루빨리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날이 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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