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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줄줄이 소시지' 입법 공장...무슨 법 넘겼는지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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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회는 '줄줄이 소시지' 입법 공장...무슨 법 넘겼는지 나도 몰라"

입력
2021.02.09 04:30
수정
2021.02.09 08:00
1면
0 0

이은주 정의당 의원 '의정자료' 분석?
법안 1건 심사 시간 평균 12분
교육위·농해수위 4분, 환노위 7분??
"법안 이름도 모르고 심사합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앞 복도에 통과되지 못한 법안들이 쌓여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 정무위원회 앞 복도에 통과되지 못한 법안들이 쌓여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의견 없으세요?"(위원장)

"예."(위원들)

"넘어가시지요. 다음, 이의 없으신가요?"(위원장)

"예."(위원들)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것도 이견 없었지요? 넘어가세요." (위원장)

지난해 9월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 박정 소위원장과 여야 소위 위원들은 이 같은 문답을 기계적으로 수차례 반복했다. 이날 소위에 상정된 법안 23개가 별다른 이견 없이 의결됐다.

국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장면이다. 해마다 수천 건씩 발의되는 법안들은 극소수의 쟁점 법안이 아니면 말그대로 '뚝딱' 처리된다. "국회요? 줄줄이 소시지 공장처럼 법을 찍어내는 곳이죠. 상임위에 무슨 법이 올라왔는지 솔직히 기억도 잘 안 나요." 지난해 국회를 처음 경험한 비례대표 초선 의원의 고백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21대 국회 첫해인 지난해 발의된 법안은 역대로 가장 많은 7,164건. 임기 첫해를 기준으로 20대 국회보다 약 1.5배, 19대 국회보단 약 2.3배 많은 수치다. 법안 통과율(21.22%)도 높아 국회의원들끼리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 입법 성과"(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는 자찬도 했다.

법안을 '많이' 발의해 '많이' 처리했다는 건 법안 심사를 그 만큼 '빨리' 했다는 뜻이다. 그게 무작정 칭찬할 일일까. '실상'을 들여다 봤다.


법안 1건 심사에 평균 12분... 4분만에 넘긴 상임위도

8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국회 사무처 의정기록 자료(법안심사소위 회의 결과 정보)를 분석한 결과, '입법 폭주'는 '부실 심사'로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상임위별 법안심사소위는 입법의 첫 관문이자, 법안을 꼼꼼히 심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계다. 법안소위마다 법안 1건에 들인 평균 심사 시간은 △19대 국회에선 22분 △20대 국회에선 24분이었다가 △21대 국회에선 12분으로 급감했다. 법안소위 총 25곳의 상정 법안과 처리 법안, 법안소위 진행에 걸린 시간을 이 의원이 종합해 계산한 결과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법안 1건당 심사를 평균 4분 만에 마친 법안소위도 있다. 사발면 1개가 익는 데 걸리는 짧은 시간에 법안을 후딱 처리한 것이다. 상임위 전문위원이 법안 검토보고서를 낭독한 이후 소위 위원들이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고 넘기면 가능한 시간이다.

교육위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소위를 4번 여는 동안 법안 205개를 16시간동안 논의했다. 법안 1건당 투입된 시간은 평균 4.8분 꼴. △환노위(7분) △복지위(9분) △외통위(10분) 등 다른 상임위 사정도 비슷하다.

소위가 열릴 때마다 수십 건에서 100여건의 법안이 상정되다 보니, 의원들이 법안 내용을 제대로 따지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의 얘기. "부처에 법안 관련 질문을 하는 게 당연한데도 '시간 없으니 회의장 나가서 따로 물어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법안 처리 건수로 국회 실적을 평가하니, 빨리빨리 넘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다." 회의 시간을 단축하자며 의원들끼리 "1인당 질의 시간을 정하자"고 즉석에서 말을 맞추기도 한다.

2020년 11월 27일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

▷임종성 민주당 위원: 오늘 (안건은) 비쟁점 법안이기 때문에... 위원님들 의견은 충분히 수렴해야 되겠지만, (발언) 시간을 좀 넣어(제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임이자 법안소위원장: 예?
▷임종성위원: 시간을 좀 체크해 주셔야 어느 정도 간략하게 요약해서 정리를 해서 질의를 드리는데, 시간(제한) 없이 진행을 하시다 보니까 한 분의 의견이 너무 길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임이자 법안소위원장: 그래요? 충분히 토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는 거고, 특히 또 여당 위원님께서는 토론하시는 걸 굉장히 즐기시는 것 같아서 시간을 많이 드리는 건데.
▷임종성 위원: 시간을 좀 조절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웅 국민의힘 위원: 원래 소위에서는 다 그냥... 예전에는 이렇게 안 했잖아요.


부처 반대 없으면 무조건 통과? "제2의 킥보드법 사태 날까 걱정"

19대 국회인 2012년 10월 당시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는 법안심사소위 지연으로 개회되지 못했다. 사진은 상정 법안들이 책상에 가득 놓여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대 국회인 2012년 10월 당시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는 법안심사소위 지연으로 개회되지 못했다. 사진은 상정 법안들이 책상에 가득 놓여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안소위는 입법의 첫 단계다. '법안 발의 → 상임위 법안소위 → 상임위 전체회의 → 법사위 법안소위와 전체회의 → 본회의'로 이어지는 입법 과정에서 법안 '제대로' 심사할 수 있는 관문은 법안소위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국회법 57조는 "소위에서 법안을 한 줄씩 낭독하며 살피는 '축조 심사'를 건너뛰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축조 심사'가 아니라 '축소 심사' 수준"이라며 "법안이 밀려있어서 조항을 하나씩 차분히 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의원들은 법안 심사를 대체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의지한다. 전문위원과 담당 부처가 검토보고서에 반대 의견을 담지 않으면, 의원들은 법안을 일단 통과시키고 본다. 그런 태만과 부주의 속에 발생한 것이 지난해 '킥보드 법 사태'다.

2020년 5월 12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

▷수석전문위원: 다음은 도로교통법 31쪽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입니다. 개인형 이동장치의 통행방법이 자전거와 동일하다면 의무 부과의 방법도 기본적으로는 자전거의 의무를 같이 부과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장하연 경찰청 차장: 전문위원 검토의견과 같습니다.
▷이채익 법안소위원장: 위원님들 넘어갈까요?
▶위원들: 예

▷수석전문위원: 40쪽 면허에 관한 사항입니다. 전기자전거 등 유사 장치와의 형평성, 개인형 이동장치의 실제 이용 양태 등을 고려할 때 면허취득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으므로 이를 면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중략)
▶장하연 경찰청 차장: 경찰청 의견은 전문위원 검토의견과 같습니다.
▷이채익 법안소위원장: 위원님들 이견 없으시지요?
▶위원들: 예
▷이채익 법안소위원장: 넘어가겠습니다.

20대 국회 말 통과된 킥보드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운전면허가 없어도 만 13세부터 전통 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지난해 5월 행안위 법안소위에 보고된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당시 경찰청 차장은 법안에 동의를 표했고, 여야 위원들도 별다른 고민 없이 법안을 넘겼다. 지나치게 헐거운 법규정 때문에 무수한 인명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21대 국회는 지난해 12월 '운전면허가 있는 만 16세 이상'으로 뒤늦게 법을 바꿨다.


법안소위 직전에 도착하는 검토보고서… “법안 이름 기억하면 다행”

의원들이 법안 검토보고서를 미리 받아 보고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안소위 하루 전날 검토보고서가 전달되는 게 보통이다. 소위 한시간 전에 검토보고서가 나오기도 한다. 민주당 초선 의원의 전언. "쟁점 법안이 아니면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소위에 참석해 겨우 설명을 듣는다. 법안 이름이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들어가면 다행이다."

2020년 9월 22일 농해수위 법안소위

▷이만희 국민의힘 위원: 소위 심사자료 작성을 최소한 우리 소위가 예정된 날짜보다 48시간 전에, 한 이틀 전에는 자료 제출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고요. 이번에도 보니까 어제 제가 (전문위원 보고서) 가안으로 받은 것이 어제 오후 한 3시인가, 2시 반인가 그 정도 됐을 것 같아요. 자료들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우리 위원들과 논의할 시간들이 굉장히 물리적으로 부족했다라는 지적을 드립니다. (중략)
▶위성곤 법안소위원장: 수석전문위원님, 관련해서 하실 말씀 계세요?
▷수석전문위원: 최대한 저희들이 (검토보고서를) 빨리 제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국회법 58조는 "법안소위 개최 48시간 전에 전문위원 검토보고서가 의원들에게 도착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는 전문위원과 국회 입법조사관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상임위마다 배정된 전문위원은 평균 2명, 국회 입법조사관은 9명이다. 한 상임위 입법조사관의 고백. "요즘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법이 발의되고 있다. 법안 10개를 동시에 잡고 보기도 한다. 급할 땐 쟁점들을 충분히 보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부처 의견을 종합하기만 한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해법은 나와 있다. ①'실적'만을 위한 묻지 마 식 법안 발의를 줄이는 것 ②법안 심사 관련 국회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 ③의원들이 법안 심사에 투입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 결국 의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법안 부실 심사로 인한 후폭풍은 막대한 사회 혼란을 만들 수 있는 만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소진 기자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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