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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짧은소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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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짧은소설] 선물

입력
2021.02.12 09:00
수정
2021.02.12 12:3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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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작가




몇 분을 기다려도 휴대폰에 코로나 재난지원금 사용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재난지원금을 신청한 체크카드와 연결된 은행 계좌의 잔액을 조회했다. 조금 전 고향에 보내려고 식자재마트에서 산 홍삼선물세트 가격만큼 잔액이 줄어들어 있었다. 잔액은 곧 지불해야 할 원룸 월세보다 약간 모자랐다. 눈앞이 하얘졌다. 나는 급히 식자재마트로 돌아가 계산원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계산원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죄송한데 여기에선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실 수 없어요.”

“작년에는 여기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했었는데요?”

“이번에는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저희 매장도 재난지원금 가맹점에서 제외됐어요.”

당황한 나는 홍삼선물세트를 환불하고 식자재마트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휴대폰으로 주변에 있는 재난지원금 가맹점을 확인했다. 계산원의 말대로 식자재마트는 가맹점 명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대형마트보다 훨씬 작은 수도권 변두리의 식자재마트가 가맹점이 아니라니. 기가 막혔다. 계산대에 두고 온 홍삼선물세트가 눈에 밟혔다. 홍삼선물세트는 재난지원금 한도 내에서 살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설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몸살이라도 걸린 듯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지난해 5월, 나는 2년 동안 다녔던 첫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항공사의 하청업체인 그곳은 코로나로 인한 매출 감소를 이유로 직원들의 무기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경영진의 방침에 반발했던 일부 직원이 정리해고됐고, 나는 그중 한 명이었다. 해고된 직원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회사와 싸우기 시작했지만, 나는 저항 없이 해고를 받아들였다. 동종 업체가 줄줄이 무너지고 있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위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일은 무의미해 보였다.

나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전직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해고된 직원들은 거리로 나와 투쟁을 벌였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끝날 때까지 전직에 관한 나의 고민은 고민으로 끝났다. 해고된 직원들이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뒤에도 거리에서 사측과 싸우고 있다는 뉴스가 작게 보도됐다. 내심 그들을 응원했던 나는 무기력하게 서른 살을 맞았다.

뉴스를 접한 어머니는 종종 내게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나는 오랜 기간 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지친 어머니에게 근심을 보태고 싶지 않아 정리해고를 숨겼다. 퇴사한 뒤에도 나는 월급날에 늘 그래왔듯이 매달 어머니에게 실업급여를 쪼개 용돈을 보냈다. 지난해 추석에도 나는 대형마트에서 산 선물세트를 고향으로 부치며 직장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속였다. 실업급여가 끊긴 상황에서 설을 맞는 내게, 재난지원금 1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재난지원금을 현금화해 선물을 살 방법이 없는지 찾아봤다. 나만 꼼수를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지난해 전 국민에 재난지원금이 지급됐을 때,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재난지원금 선불카드 판매가 활발히 이뤄졌고, 오프라인에서도 낮은 가격에 재난지원금 선불카드를 사들인 뒤 되파는 상품권 판매 업소들이 적발됐다는 뉴스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각 지방자치단체는 ‘현금 깡’ 적발 시 전액 환수하고 고발하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경고를 감히 거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식자재마트 방문객과 거래를 해보기로 했다. 홍삼선물세트의 가격은 8만 원이 조금 안 됐다. 나는 방문객에게 재난지원금 전액을 주변에 있는 다른 가맹점에서 쓸 수 있게 해주고, 방문객은 마트에서 홍삼선물세트를 사서 내게 건네주면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계산이 섰다. 즉석에서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이니 단속도 불가능할 듯싶었다. 나는 마트 정문 옆에 서서 오가는 방문객들을 살폈다. 그들에게 접근해 말을 걸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표정을 알 수 없어서,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내 말이 먹힐지 감을 잡지 못했다. 어머니와 비슷한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마트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한 차례 심호흡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무슨 일이죠?”

치켜뜬 그녀의 두 눈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내가 마스크에 가려진 그녀의 표정을 파악할 수 없듯이, 그녀 또한 마스크 속 내 얼굴을 파악할 수 없으니 경계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저기 마트 앞 원룸에 사는 사람인데요.”

“저기요. 마스크 똑바로 써주세요.”

그녀는 한걸음 물러서며 단호하게 내 말을 끊었다. 나는 다급하게 마스크를 고쳐 쓰며 그녀에게 준비된 말을 떠듬떠듬 꺼냈다. 그녀는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손사래를 쳤다.

“됐어요.”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내게서 멀어졌다. 수치심과 모멸감이 차올랐다. 가슴이 묵직해지고 손끝이 덜덜 떨렸다. 마트를 오가는 방문객 여럿이 무심하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외로웠다. 나는 충동적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내 전화를 받았다.

“아들, 별일 없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들렸다. 괜스레 서러워진 나는 눈에 고인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저야 늘 똑같죠.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도 늘 똑같지 뭐. 그나저나 이번 설에는 집에 올 수 있는 거니?”

나는 문득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이번 설 연휴에 제 자취방에 한 번 들르지 않으실래요?”

“뭔 일 있니?”

어머니가 걱정을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여기에 한 번도 와보신 적 없잖아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오시면 제가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니까 대중교통 이용하지 말고 꼭 차를 몰고 오세요. 그리고 집에 있는 김장김치도 챙겨오세요. 먹고 싶어요.”

“네가 사긴 뭘 사. 차가 밀리니까 연휴보다 하루 먼저 올라갈게. 네 아버지는 걱정 안 해도 된다. 병실에 말동무가 많아서 심심할 틈이 없다더라.”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나는 주변에 있는 재난지원금 가맹점을 다시 확인했다. 소고기를 파는 식당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설 연휴에도 문을 여는 식당이었다. 재난지원금을 모두 털면, 어머니와 둘이서 배에 적당히 기름칠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진영 소설가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다시, 밸런타인데이'가 있다. JTBC 드라마 '허쉬'의 원작인 '침묵주의보'로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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