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국내 최정상 걸그룹 자리를 지킨 소녀시대 출신 수영이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가 연기한 '영 앤 리치' 재벌 3세 CEO 서단아에게서 소녀시대의 모습이 겹쳐진다. 지난 4일 막 내린 JTBC 드라마 '런 온'에서 서단아를 연기한 배우 최수영(31)은 "단아가 소녀시대와 많이 닮았다"고 했다.
"화려해보이고 다 가진 것 같고, 전부 주어진 것 같아 보이죠. 사실은 고군분투하면서 살고 있고,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끝없는 자기 관리를 해야하는, 너무나 쉬고 싶은 삶인데. 그런 점이 제 청춘과도 닮아있더라고요."
그런 서단아는 최수영이 만나길 기다려왔던 캐릭터다. 최수영은 8일 화상 인터뷰에서 "누구나 자기만 아는 자신의 장점이 있지 않나. 드러나지 못했거나 나중을 위해 꽁꽁 숨겨둔. '단아같은 캐릭터를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는데'라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재벌 집안에서 태어난 서단아는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는 게 일생일대 과제인 인물. 서명그룹의 유일한 적통이지만, 후처의 아들 서명민(이신기) 때문에 후계 서열에서 밀려난 탓이다. 여기까진 별반 새롭지 않다. "너나 나나 최고경영자 되고 싶지. 근데 내가 하면 비정상이고, 네가 하면 정상이래. 너랑 나랑 타고난 거 딱 하나 다른 게 성별인데." 서단아가 서명민에게 이렇게 일갈하는 순간, 시청자들은 서단아에게 빠져들었다. 안하무인 재벌 상속녀가 아니라 원하는 것은 꼭 얻고자 하는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우먼, 그게 서단아였다.
남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수영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겼다. 하이힐 대신 발 편한 운동화와 한 손엔 텀블러로 '서단아 룩'을 완성했다. "기존 재벌가 딸이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로 보이기 위한 설정"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니 대사의 말맛도 살아났다. "'현실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게 단아의 대사가 세게 느껴졌어요. 단아는 무례한 게 아니라 성장과정 속 결핍에서 나오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캐릭터의 결핍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되더라고요. 결국 내가 얼마나 믿느냐 차이인 것 같아요."
찰진 대사가 특징인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였던 박시현 작가의 데뷔작인 '런 온'은 일찌감치 '대사 맛집'으로 정평이 났다. 최수영과 주연 배우들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수 차례 대본을 함께 읽고 연습했다고 한다. 빠른 호흡으로 대사를 주고 받는 것뿐 아니라 전달력과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도 중점을 뒀다. 그래선지 현장에선 대사로 NG를 내는 배우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12세 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최수영은 2007년 소녀시대로 국내에 데뷔했다. 이후 연기도 병행하면서 배우로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이름 석 자 앞의 배우라는 수식이 더 이상은 어색하지 않다.
"아직도 '수영이 이걸 할 수 있을까', 수영이란 배우를 쓰는 건 모험이라는 생각을 하는 연출자가 있지 않을까요. 일단 그런 생각을 없애는 게 저의 숙제죠. 단아같이 캐릭터성 강한 역할이나 주인공도 물론 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연기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고 싶다는 바람이 제일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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