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라면 명가' 이끈 창업주
내달 주총서 등기이사직 내려놓기로
장남 신동원 부회장 승계 수순
뚝심 있는 '한 우물 경영' 철학으로 지난 56년간 농심을 '라면 명가'로 키운 창업주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룹의 전략과 신사업 등 굵직한 현안을 직접 진두지휘했던 신 회장은 올해 89세. 최근 들어선 고령에 건강 문제 등이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의 2세 경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내달 2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 안건에 신춘호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건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첫째 아들인 신동원 부회장을 비롯해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신 회장은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사실상 1965년 농심 창업부터 이어오던 경영에서 손을 떼는 수순이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동생이다. 라면 사업을 위해 1965년 롯데공업을 창업했고 19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라면 사업을 크게 반대했던 신격호 회장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감히 롯데라는 이름을 쓰냐"는 말을 들은 신춘호 회장이 '농부의 마음'이란 뜻으로 농심 브랜드를 만든 건 유명한 일화다. 1992년까지 농심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던 신 회장은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되면서 그해 10월 농심그룹 총수가 돼 등기이사직을 수행해 왔다.
그는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고 불렀다. 꾸준히 한국인 입맛에 맞는 라면 개발에 집중했고 당시 유행하던 닭고기 육수 대신 소고기 국물을 재료로 한 '소고기라면'으로 시장을 선도했다. 대표 제품인 '신라면'을 비롯해 '너구리' '육개장 사발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을 연달아 성공시켰고 역으로 해외 입맛까지 사로잡으면서 지난해 해외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새우깡' '양파깡' '감자깡' 등 스낵 부문에서도 히트 상품을 배출했다.
농심 후계구도는 일찌감치 정리된 상태다. 신동원 부회장이 농심 지주사인 농심홀딩스 지분의 4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2000년부터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신 회장은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에겐 전자소재, 포장재 사업 중심인 계열사 율촌화학을 맡겼고,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은 메가마트(전 농심가)를 이끌고 있다.
신 회장은 당분간 회장직은 유지할 예정이지만 승계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신동원 부회장이 회장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농심 관계자는 "이번 주총에 신동원 부회장의 회장 선임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차기 회장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지만 신 부회장이 박준 부회장과 각자 대표 체제로 회사를 경영해 왔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중국, 미국 등 해외사업을 성공시키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신춘호 회장이 워낙 고령인 데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 회장은 총수 판단이 필요한 일에만 개입하고 나머지는 신동원 부회장에 맡긴 지 꽤 오래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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