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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 포퓰리즘이 잘 하는 것이 있다면

입력
2021.02.08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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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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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권위주의적 경사를 비판하면서 문 정부와 여권의 행태를 좌파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어법이 아니다. 첫째, 현 집권세력을 사이비 진보로 보는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좌파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좌파로 규정하는 것 자체에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둘째, 파시즘은 특정한 이념적 지형도와 국제정치적 판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것을 단지 어떤 통치 스타일의 일부 외형을 꼬집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한편 현 집권세력은 포퓰리즘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트럼프와 브렉시트, 동유럽과 터키를 비롯해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는 정치적 동원의 신드롬을 논하는 데 활발히 사용되는 포퓰리즘은 정치의 스타일을 지칭하는 신축성 있는 개념으로서 효능을 가진다.

포퓰리즘은 대의정치로부터 소외된 인민을 내세워 기성 정치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민, 민족, 민중 등 어떻게 부르든 주권자인 인민은 동질적인 집단이며 정치는 그들의 일반의지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직접민주주의에 호소한다. 그러나 대의기관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면 가차없이 다수결을 무기로 목적을 관철시키기도 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를 비민주적인 기관으로 치부하여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지지하든 반대하든 현 집권세력에 대해 포퓰리즘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포퓰리즘은 나쁘기만 한 것인가? 그리고 위의 모습만을 가졌는가? 좌익 정치학자 샹탈 무페는 포퓰리즘이 탈정치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잠재력을 가졌음을 주장한다. 그는 민족 감정을 자극하여 제노포비아를 조성하고 난민과 이주민 등 소수자를 적대시하는 우익 포퓰리즘을 배격하면서 다양한 배경과 요구를 가진 집단들을 연합하여 인민을 재구성하는 좌익 포퓰리즘을 제창한다. 실제로 급진 좌파의 대명사로 부상한 그리스의 시리자(Syriza)와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는 포용적인 이민정책을 표방했다. 2015~2019년에 집권한 시리자는 이민 2세대가 쉽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국적법을 개정하는 한편 미등록외국인을 수용하는 구금시설을 폐쇄했으며, 몰려오는 중동 난민에게도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이를 유럽연합을 상대하는 지렛대로 삼았다. 에이레공화군(IRA)을 지원해 테러리스트 조직으로까지 몰렸던 아일랜드의 좌파 정당 신페인(Sinn Fein)은 어떤가? 그들은 영국을 상대로는 민족주의적이지만 그 외에는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들은 일찌감치 '많은 목소리, 하나의 나라'를 표방하면서 이주민 등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해왔다. 매력적인 좌익 의제들을 통해 소외계층의 지지를 넓힘으로써 극우 정치세력이 차지할 만한 공간을 선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류' 정치를 주도해 온 집권당에 포퓰리즘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시대의 정치에 포퓰리즘이 불가피하다면 좌익 포퓰리즘의 강점을 참고하라는 것이다. 기득권층을 억압받는 집단으로 둔갑시키는 이상한 개혁론, 아이돌의 정치적 경쟁자와 비판적 논객에게 사이버 ‘양념’을 뿌려대는 팬덤정치, 인민의 삶과 관계없는 사법 때리기에 골몰하는 것보다는 부유세와 같은 좌익의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소외계층의 공감을 얻어 극우의 공간을 제거하는 한편 코로나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미등록이주자와 난민을 포용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공론화해 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도모하는 그런 포퓰리즘이 낫지 않냐는 것이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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