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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에 이름을 붙이니, 이름처럼 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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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에 이름을 붙이니, 이름처럼 살 것만 같다

입력
2021.02.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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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마련한 시골집에 이름을 붙여줬다. 작은 조각들이 모이고 모인 집 같아 '조각집'이다. 아파트와는 좀 다른 분위기를 원했는데, 바라던 대로 되었다. 공간 디자이너인 딸과 딸 친구가 디자인하고, 군데군데 품을 보탠 집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돌아가신 엄마가 오래 간직했던 삼베로 벽장의 문을 만들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책상을 옮겨다놓으니, 시간을 묵힌 멋이 느껴진다. 헤진 혼수이불을 뜯어 새 이불로 만들고, 옛날 소반 두 개를 침대 곁에 놓으니, 낡은 물건들이 각별해진다. 아파트에서는 방치되었던 의자와 방석들까지도 여기서는 빛이 나서 마음이 뿌듯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내 이름이 없어졌다. 아내, 엄마, 며느리가 되면서, 나라는 사람은 증발해버렸다. 추구하는 꿈이나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으면서도 집을 쓸 줄은 몰랐다. 집은 집안일만 떠올리게 했고,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았다. 충족되지 않은 뭔가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 찾으려고 했고, 밖에 있는 줄만 알았다. 원하는 삶의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집이 이제는 보인다. 이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알겠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인생을 살고 싶다.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와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꾸미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면서,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 나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하고 싶은 일들로 나를 표현하고 또 이해받고 싶다. 가끔씩 행복하고 충만하면서, 삶의 끝까지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시골집은 내 아이덴티티다. 나만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렇게 사는 삶 자체이다. 멀찌감치 떨어져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가까이서 촘촘히 바라보며 삶을 누린다. 흔들림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조용한 공간에서 느린 시간을 보낸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마음이 넉넉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 안에서는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나를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현장이다.

편안하고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여유가 감사하다. 따스한 햇볕과 감미로운 달빛이 새록새록 경이롭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새삼 기막히다. 봄이 오면 마당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꽃이 피면 함께 꽃구경을 할 거다. 단출한 밥상을 나누면서도 깔깔깔 큰소리로 웃고, 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길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거다. 내 삶은 대단하지 않아도 재미있을 거고, 가만히 있던 집의 존재는 커질 거다.

"행복을 구질구질하게 쫒아 다니지 마라.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오게 하라. 그 비밀은 단순한 삶의 방식에 있다." - 장석주,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앞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이미 다 가지고 있는' 나이에도 꿈꾸길 잘했다. 꿈같은 집을 얻었으니 꿈처럼 살고 싶다. 언젠가 살고 싶은 대로 그렇게 살고 싶다. 뜨거울 때 먹고, 맛있을 때 먹으면서, '지금'을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나를 남김없이 사용하고 싶다. 거창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벌린 일은 '즐거운 소동'이 될 거다. 하찮은 삶은 바라던 삶이 될 거고, 나는 되새길 수 있는 추억이 많은 알부자가 될 거다.

이름은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에게 없는 것과 부족한 것을 채워줄 힘이기도 하다. 때론 이유가 없어도 확신이 드는 것처럼, 집에 이름을 붙이니 금세 의지가 된다. 조각을 이어 붙이면 커다란 조각보가 되듯이,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로 내 삶은 크고 넓어지리라. 당신은 집에 어떤 이름을 붙이고 싶은지요? 아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요?

이진숙

이진숙



이진숙 전 클럽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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