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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요?

입력
2021.02.06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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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암탉 이야기의 허상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16년 12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6차 촛불집회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12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6차 촛불집회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한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면 ‘참 이상한 방면으로 개성적인 사람도 있군’ 하며 지나치면 된다. 그러나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 여럿이면 그것은 사회 현상이다. 성차별 발언도 그렇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나서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며 비웃는 남자어른들이 있었다. 어른답게 현금으로 응원은 못해줄 망정, 앞날이 창창한 여자의 능력을 깎아내리고 기죽이는 말이나 하다니. 어린 눈으로 봐도 한심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암탉이 울면 어쩌구 하는 남성들은 계속 등장했다. 놀라웠다. 나이 많은 이들이나 쓰는 구시대 방언인줄 알았는데. 내가 불운해서 후진 남성들만 만났던 것일까? 아니다. 암탉 운운하는 남성들은 흔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2016년에서 17년까지의 광화문 광장에서였다.

시위구호도 아닌데 “이래서 여자는 안 돼!” “역시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니까!”라고 말하던 남성들이 많았다. 페이스북 등 당시의 SNS는 또 어떠했나. 그런 내용을 담은 글과 댓글을 쓰는 남성들이 매우 많았다. 이상했다. 지금은 21세기인데, 어디에서 이 많은 조선시대 남성들이 촛불을 든 채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일까. 신기했다. 어찌나 많은지 이들만으로도 광화문 광장 전체에서 촛불 파도타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사회 현상이다.

조선 순종, 고려 공양왕, 신라 경순왕 ... 모두 남자다

여기서 잠깐, “나도 그때 광화문에 있었고 페이스북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라고 반응하실 분을 위해 친절하게 덧붙인다. 일상적이고 흔한 사건, 본인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원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016년 11월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 남성이 박근혜 대통령을 프랑스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에 비유한 가면을 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016년 11월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 남성이 박근혜 대통령을 프랑스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에 비유한 가면을 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친절해진 김에, 계속한다. 조선의 마지막 왕은 순종, 고려는 공양왕, 신라는 경순왕, 고구려는 보장왕, 백제는 의자왕이다. 다 남자다. 역대 우리나라들은 다 남자 때문에 망했다. 초중고교에서 이미 배워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왜들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말할까? 궁금해서 공부했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담은 중국 고대사에서 유래했다.

중국 하나라의 마지막 왕은 17대 걸(桀)왕이다. 그는 말희(?喜)라는 미녀에게 빠져서 나랏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로 연못을 채우고, 연못 둘레에 나무에 고기 안주를 건 숲을 만들어서 놀았기에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길 정도였다. 여기에 잔학행위까지 자행하자 분노한 백성들은 탕(湯)을 지도자로 모시고 봉기했다. 걸왕은 도망치다 살해당하고 하나라는 망했다.

탕은 상나라를 세웠다. 상나라는 기원전 1300년경 수도를 은으로 옮긴 후에는 은(殷)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지막 왕인 31대 주왕은 포악하고 사치와 환락을 즐겼으며 달기라는 미녀에게 빠져서 폭정을 일삼았다고 한다. 상나라는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에게 멸망당한다.

하상주의 걸왕, 주왕, 유왕 ... 이들도 남자였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칠 때 발표한 포고문이 있다. “백성들에게 고한다. 옛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은나라 주왕은 달기의 말만 들으며 하늘을 공경할 줄 모르고 포악한 정치를 일삼아 백성들은 도탄에 허덕이고 있다. 나는 이제 천명을 받들어 은나라를 토벌하려 한다. 모두 일어서라!” 그렇다. 암탉이 울면 어쩌구 하는 말의 기원은 '사기'의 이 대목이었다.

주나라는 이민족인 견융족의 공격을 받아 12대 왕인 유왕이 살해당한다. 이후 주나라는 수도를 지금의 시안에서 동쪽에 있는 뤄양으로 옮겨가는데 이 사건을 ‘주의 동천’이라고 부른다. 동천 이전은 서주(西周), 이후는 동주(東周)라고 한다.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에게도 걸왕, 주왕과 비슷한 고사가 전해진다.

유왕은 포사라는 미인을 사랑했는데, 포사는 웃지 않았다. 외적이 침입했다는 봉화를 거짓으로 올리니 제후의 군사들이 몰려와서 허둥지둥하는 것을 보고서 웃었다. 유왕은 포사가 웃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서 거짓 봉화를 자꾸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반란군이 몰려왔다. 진짜 봉화를 올렸건만 어느 제후국의 군사도 유왕을 돕기 위해 오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유왕은 살해당했다.

하, 상, 주의 걸왕, 주왕, 유왕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미녀 말희, 달기, 포사. 여기에는 같은 패턴이 보인다. 나라가 망할 때는 미녀에 눈먼 어리석은 왕이 등장한다는 것. 이후 한나라 때는 이렇게 나라를 기울게 한 미녀를 가리키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나라를 망친 자는 왕 본인인데. 그리고 20세기 초까지 세계 각국의 군주들은 마지막 왕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왕들이 미녀 후궁이나 애첩을 두고 주지육림이라 할 만한 좋은 술과 음식을 즐겼는데.


'사기'를 쓴 사마천의 모습. 위키백과

'사기'를 쓴 사마천의 모습. 위키백과


이번에는 역사책 '춘추'를 보겠다. 공자가 쓴 역사책 '춘추'의 기록 원칙은 ‘포폄(褒貶)’이었다. 기릴 포. 떨어뜨릴 폄. 즉 역사를 기록할 때에 찬양과 비난을 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역사가는 사실을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비난하며 옳고 그른 것을 가려서 적어야 한다고 믿었다.

암탉 얘긴 유학의 도덕적 역사관이 만든 허상

이후 중국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기록할 때에 인물과 사건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을 주요 임무로 여기게 된다.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도 도덕의 타락에서 원인을 찾게 된다. 그래서 중국사에서는 어느 국가가 망할 때면 꼭 사치와 향락과 주색잡기에 빠진 왕을 등장시킨다. 왕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에 나라가 망했다고 서술하여 후세인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왕이 타락하게 된 원인을 왜 왕 본인이 아니라 옆에 있는 여성에게서 찾을까? 물론 당시는 전통적인 성차별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고전 역사서인 '사기'나 '춘추'에 기록되었다하여 여자 때문에 나라를 망쳤다거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거나 하는 말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단지 그 시절 중국 사회와 역사 기록의 패턴이 그랬을 뿐.

중국의 ‘포폄’이라는 기록 원칙과 성차별적 기술 태도는 유교 사상과 합쳐져서 우리나라 역사 기술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진성여왕에 대한 기록이다. 고려 이후의 남성 유학자 역사가들은 신라가 망한 이유를 여성 군주인 진성여왕에게서 찾곤 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은 56대 경순왕이니, 51대인 진성여왕 때 신라가 망하지는 않았다. 여왕 즉위 전에 이미 신라는 기울어지고 있었다.

애초 여왕에게는 나라를 말아먹을 큰 권력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오빠에 이어 즉위했다가 조카에게 양위한 사실을 보면, 남자 조카가 성장하기까지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 여왕의 주 임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최치원을 등용하여 개혁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암탉 운운은 그저 아무 말이나 떠드는 성차별주의자

그러나 진성여왕은 후대의 남성 역사가들에 의해 방탕한 생활을 일삼아 신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기록된다. 심지어 1100여년이 지나 광화문에 불려나와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는데에도 이용당했다. ‘진성여왕을 보라! 박근혜를 보라!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라고. 이는 역사 비판도 정치 비판도 아니다. 단지 ‘나는 성차별주의자요’라는 자기 고백일 뿐.


정월대보름을 맞아 '해운대 달맞이 온천축제'가 열린 2008년 2월 2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행렬이 재현되고 있다. 이 행사는 진성여왕이 해운대 온천욕으로 피부병이 나았다는 전설을 재현한 것이다. 연합뉴스

정월대보름을 맞아 '해운대 달맞이 온천축제'가 열린 2008년 2월 2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행렬이 재현되고 있다. 이 행사는 진성여왕이 해운대 온천욕으로 피부병이 나았다는 전설을 재현한 것이다. 연합뉴스


중국사와 신라사, 포폄 원칙 등등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말이 성차별적이며 듣는 여성이 기분나빠할 것임은 다들 안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굳이 그런 말을 한다. 역사적 사실이나 근거와 상관없이 아무 말이나 해서 어떤 사안이든 여성을 욕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돌 더미에서 아무 돌이나 집어 던지는 자들에게 그 돌이 화강암인지 현무암인지 둥근 돌인지 길쭉한 돌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법. 반면 억울하게 돌에 맞는 사람은 이유가 궁금하다. 이 돌이 어디에서 온 돌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또 날아올 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산별곡'에도 있지 않은가. ‘어디에다 던지려 한 돌인가. 누구를 맞추려 한 돌인가. 미워하는 이도 사랑하는 이도 없이 맞아서 우니노라.’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성차별주의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아무 말에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 여성들이 이유 없이 돌에 맞고 울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흔하게 쌓인 돌 더미에서 돌 하나를 덜어내어 치우는 마음으로, 나는 지금 쓴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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