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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앗아간 코리안 드림… 재개발 예정지의 '예고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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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앗아간 코리안 드림… 재개발 예정지의 '예고된 비극'

입력
2021.02.01 22:00
수정
2021.02.01 23:0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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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로 난방하던 옆집서 난 불 번져
진입로 협소 진화 지연돼 주택 전소
"슬럼화 된 전국 재개발예정지 살펴야"

1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광역화재조사팀이 강원 원주시 명륜동 주택 재개발지역에서 난 화재에 대해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1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광역화재조사팀이 강원 원주시 명륜동 주택 재개발지역에서 난 화재에 대해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31일 새벽 강원 원주 다문화가정의 코리안 드림을 앗아간 화재는 재개발 예정지역의 ‘예고된 비극’이었다. 전기와 수돗물이 나오지 않은 생활환경, 좁은 골목 탓에 소방차는 '골든타임'을 흘려보내야 했다. 전국적으로 재개발사업이 한창이고 재개발예정지가 안전 사각지대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관련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이 난 곳은 강원 원주시 원동남산재개발구역이다. 지난해 11월 관리처분계획인가 승인을 받은 뒤 재개발사업이 가시화한 곳이다. 주민들은 오는 9월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9월까지는 시간이 있었던 만큼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주민 20여명이 살고 있었다. 전날 화재는 무연고자 A(65)씨가 거주하던 집에서 시작돼 순식간에 결혼 이주 여성(32)의 집으로 옮겨붙었고, 필리핀에서 온 그의 어머니(73)와 두 자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수년 전부터 지인 명의의 빈집에 살던 주민 A씨는 조금씩 기름을 구해 석유난로로 난방을 했다는 게 이웃들의 얘기다. A씨가 석유난로로 난방을 한 것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A씨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이웃 주민은 "A씨가 자주 술에 취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원주시는 이 같은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주시 관계자는 "10년 전 도로명주소가 부여된 뒤 해당 주택에는 전입신고 기록이 없었다”고 말했다. 예정된 재개발에 따라 주민들이 떠나면서 생긴 빈 집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다. A씨의 집엔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다.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해 인근 주택으로 화염이 옮겨갈 수 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웃 주민 홍모(59)씨는 "불이 난 집에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았다"며 "전입신고 없이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주민센터에 알렸는데, 불이 날 때까지 파악이 안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불이 난 곳은 고지대에다 노후주택이 밀집해 각종 사고와 재난에 취약한 곳이다. 그러나 이에 대비한 안전대책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특히 진입로가 좁은 탓에 화재 당시 진화 차량과 장비가 신속히 진입하지 못했다. 때문에 대원들이 소방차 호스를 짊어진 채 골목길을 100m가량 올라가 불을 꺼야 했다. 주민 윤모(67)씨는 "소방차는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사다리차는 무용지물이라 주민들이 같이 호스를 끌어 올려서 불을 껐다"고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 사이 언덕에 자리한 주택 두 채가 전소됐고, 그 속에서 잠자던 외할머니와 손주들을 생명을 앗아갔다.

전문가들은 슬럼화 된 재개발 예정지역에 대한 관리 부실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기복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연탄은행 대표는 "재개발사업이 예정된 지역은 급속도로 슬럼화 해 각종 부작용이 적지 않다"며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도심 재개발, 도시재생사업 현장을 대상으로 보다 촘촘한 복지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화기, 화재 감지기만 설치돼 있었어도 이렇게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며 "큰 돈 들지 않는 장비와 시설인 만큼 자치단체가 초기 대응을 위한 대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주= 박은성 기자
원주= 윤한슬 기자
원주=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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