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 벤틀리는 2020년 현재에도 수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시장에서도 호평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더욱 대담하고 고급스럽게 발전한 새로운 컨티넨탈 시리즈와 플라잉스퍼 등 다양한 존재들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시하며 새로운 시대 속에서 벤틀리의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1919년 브랜드 출범 이후 100년의 시간을 거친 벤틀리는 어떤 과거를 갖고 있을까?
1919년 첫 깃발을 세우다
1919년, 대한민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혼란스럽고 혹독했다. 만세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갔고 일제는 더욱 혹독하게 한반도를 지배하고 동아시아에 대한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다 건너 저 먼곳, 영국에서는 앞으로 길게 이어질 또 하나의 깃발이 세워졌다.
사업가이며 엔지니어이며, 그리고 카레이서 등 다양 한 분야에서 재능을 갖춘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는 1919년 10월, 런던에서 벤틀리의 깃발을 세우게 되었다. 벤틀리 브랜드의 첫 번째 차량인 ‘벤틀리 3 리터’는 1920년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거쳐 1921년 9월 고객 인도를 시작했다.
모터스포츠의 행보를 시작한 벤틀리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의 배경, 그리고 의지 때문일까?
벤틀리 브랜드는 브랜드의 출범과 함께 벤틀리의 차량들은 우수한 내구성과 우수한 완성도를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호평을 받았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각인되었고 벤틀리는 ‘고속 주행 성능’ 등을 강조하며 꾸준한 기술 발전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러한 행보 속에서 벤틀리는 브랜드 출범과 함께 모터스포츠 분야에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며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다. 실제 벤틀리는 1922년 인디애나 폴리스 500은 물론 같은해 치러진 투어리스트 트로피 등에 출전하며 우수한 성과를 거두기도 헀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도 출전하며 ‘벤틀리의 존재감’을 전세계 곳곳에 과시했다. 실제 벤틀리는 1924년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레이스에 적극적인 참여를 이어가며 숱한 우승 및 활약을 펼치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행보는 ‘회사의 재정’에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실제 이러한 배경으로 벤틀리는 1931년, 롤스로이스에 인수되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인수 후에도 벤틀리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았다.
세계대전에 함께 한 벤틀리
전세계를 긴장으로 몰아 넣고, 또 각 브랜드들의 행보를 크게 뒤흔들었던 제 2차 세계대전에 의해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와 같이 ‘항공기 엔진’ 개발에 집중했다. 벤틀리는 로터리 타입의 에어로 엔진을 통해 연합군에 ‘기동성’을 보장했다.
연합군의 승리, 특히 ‘제공권’ 확보에 큰 기여를 한 벤틀리는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는 이를 인정 받아 대영제국의 훈장 중 하나인 MBE(Memb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수여 받기도 했다.
럭셔리 GT의 가치를 정의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롤스로이스와 함께 생산 거점을 옮긴 벤틀리는 여느 브랜드가 그런 것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쟁 속에서 얻게 된 경험 및 생산 공정에서의 기술 발전은 벤틀리를 보다 현대적인 브랜드로 도약하게 만들었고, 벤틀리 역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럭셔리 GT’의 가치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삼아 새로운 시작에 나섰다.
특히 이러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적용한 ‘벤틀리 R-타입 컨티넨탈’의 경우에는 193km/h에 이르는 고속 주행 성능을 갖추며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 차량’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1957년에는 보다 근대적인 개발 기술과 디테일 등이 더해진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 스퍼, 1959년 벤틀리 S2 등이 연이어 데뷔했다. 이와 함께 완전히 새롭게 개발된 V8 6.2L 알루미늄 엔진 역시 추가되어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까지도 꾸준히 이어져 T 시리즈와 럭셔리 쿠페라 할 수 있는 코니시 등이 데뷔하며 벤틀리 라인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갔다. 이외에도 V8 엔진의 경우 배기량을 6.75L으로 확장하게 되어 ‘벤틀리의 규격’으로 삼았다.
비커스 속 벤틀리
1980년대의 벤틀리는 영국의 군수 기업 중 하나인 비커스 산하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시기, 벤틀리는 ‘브랜드 운영의 현대적 변화’를 이뤄냈다. 실제 벤틀리는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네이밍을 새롭게 다듬었고 최신의 기술과 경험을 한껏 뮬산을 ‘헤드라이너’로 앞세웠다.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담아낸 ‘뮬산’은 시장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으며, 1982년에는 뮬산 터보가 데뷔하고, 이후 1985년에는 뮬산 터보 R 등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쿠페 모델인 코니시는 ‘컨티넨탈’로 재구성되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폭스바겐 그룹에서 맞이한 21세기
1998년, 폭스바겐 그룹과 BMW 그룹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두 브랜드를 인수하기 위해 많은 경쟁을 이어왔고, 그 결과 두 그룹은 롤스로이스를 BMW 그룹이 인수하고 벤틀리를 폭스바겐 그룹이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벤틀리를 인수한 폭스바겐 그룹은 벤틀리를 완벽하게 ‘럭셔리 GT’ 브랜드로 재구성하고 이를 위한 포트폴리오 구성을 이뤄냈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는 물론이고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나섰다.
이에 2003년에는 럭셔리 GT의 아이콘이 된 컨티넨탈 GT를 선보였다. 두 차량은 데뷔 이후 꾸준한 세대 교체는 물론이고 브랜드의 가치를 담은 섬세한 연출을 통해 시장에서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2009년에는 ‘벤틀리 뮬산’을 브랜드 창립 90주년을 기념하며 제시해 전세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덧붙여 벤틀리는 시장의 요구에 따라 럭셔리 SUV, ‘벤테이가’를 선보이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벤테이가는 데뷔와 함께 시장에서 호평을 받을 뿐 아니라 판매 부분에서도 맹활약하며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와 함께 벤틀리는 벤틀리가 보유하고 있는 포트폴리오의 꾸준한 개선을 통해 신형 컨티넨탈 GT는 물론이고 플라잉스퍼 등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전세계의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모터스포츠의 열정을 뽐내는 벤틀리
한편 폭스바겐 그룹에 속하게 된 벤틀리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모터스포츠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벤틀리는 2001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 복귀했고 2003년에는 벤틀리의 프로토타입 레이스카 ‘벤틀리 스피드 8’이 등장해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의 우승을 장식했다.
여기에 21세기 모터스포츠의 주류로 자리 잡은 ‘GT 레이스’를 위한 시도 역시 이어졌다. 실제 벤틀리는 2도어 럭셔리 GT인 ‘컨티넨탈 GT’는 벤틀리를 기반으로 FIA GT3 레이스에 출전해 다양한 레이스에 나서고 있다.
특히 2세대 컨티넨탈 GT를 기반으로 한 FIA GT3는 전세계서도 다양한 활약을 펼쳤으며 한국인 드라이버 ‘앤드류 김’ 등의 활약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이외에도 벤틀리 최신 모델인 3세대 컨티넨탈 GT를 기반으로 한 FIA GT3 레이스카를 개발 투입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사진: 벤틀리모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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