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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한수원 이사회 23일 전 '의결 내용' 미리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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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한수원 이사회 23일 전 '의결 내용' 미리 알았다

입력
2021.01.28 22:16
수정
2021.01.28 22: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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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 3명 공소장 공개
월성 원전 폐쇄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 앞두고
청와대-산업부 긴밀한 의사소통 정황 확인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직무배제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법원 결정에 따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일 총장직에 복귀했다. 사진은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2020.12.2/뉴스1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직무배제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법원 결정에 따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일 총장직에 복귀했다. 사진은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2020.12.2/뉴스1


월성 원자력발전소(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 및 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라인 공무원 3명의 공소장이 공개됐다. 공소장에는 이들이 삭제한 문건 530건의 목록이 포함됐는데, 여기에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월성 원전을 폐쇄하기 직전 청와대와 산업부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나 있다. 검찰이 원전 폐쇄 과정에서 청와대의 의사가 반영된 물증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는 당시 청와대 관계자 쪽으로 뻗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28일 SBS가 공개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8년 5월 23일 '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과 향후 추진일정'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파일 제목에는 'BH(Blue house)', 즉 '청와대 보고용'을 뜻하는 단어가 포함돼 있었다.

삭제 자료서 BH 문건 다수 발견

검찰이 이 파일을 복구한 결과, 문건에는 "(2018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수원 이사회가 열리기 23일 전, 산업부가 이사회 날짜와 결과까지 담은 내용을 미리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다. 당시는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 최종안도 나오기도 전이었을 뿐더러, 한수원 이사들조차 이사회 일정을 모를 때였다. 결국 산업부가 한수원 이사회의 의결 내용을 미리 기획해고, 한수원은 산업부의 결론을 충실히 따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셈이다. 산업부가 이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까지 나오면서, 한수원 의사 결정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수원 이사회가 임박한 2018년 6월 초중순에 문건은 7건이 추가로 작성됐다. 대통령 보고 목적으로 만든 문건이 청와대의 수정 요청으로 다시 작성된 경우도 이었다. 6월 11일에는 '산업비서관 요청 사항'이라는 문건이 작성되기도 했다. 월성 원전 폐쇄를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한수원 이사회(6월 15일)를 앞둔 상황에서, 청와대와 산업부가 매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관여한 산업부 원전 라인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관여한 산업부 원전 라인


산업부가 시민단체 동향 파악도

산업부 공무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동향을 파악해 관련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2018년 3월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원전수출 국민행동'이 출범했는데, 단체가 공식 출범하기 보름 전 산업부는 이 단체와 관련한 동향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한 달 반 동안 이 단체가 주최한 기자회견과 집회 관련 동향 보고서 4개가 추가로 작성됐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던 한수원 노조의 동향이 담긴 파일도 나왔다. '한수원 신임 사장 관련 노조 동향'이라는 제목의 삭제 파일은 사장 임명을 한 달 앞둔 2018년 3월 9일 작성됐다.

검찰은 문건 삭제에 백운규(56)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윗선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추가로 조사 중이다. 이 사건을 맡은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는 25일 백 전 장관을 상대로 월성 1호기 폐쇄에 앞서 한수원의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직권남용) 등에 대해 조사했다. 백 전 장관은 이미 재판에 넘겨진 산업부 공무원 3명이 원전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부인하는 취지로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전 장관까지 소환한 검찰은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이 경제성 평가 등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공소장 목록에서 보듯, 산업부는 한수원의 의사 결정 과정을 사실상 주도하면서 깊숙이 개입했고, 청와대 역시 이 과정을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산업부가 청와대에 원전 폐쇄 관련 추진 현황을 수시로 보고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채희봉(54) 전 산업정책비서관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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