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사실은 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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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사실은 나무가 아니다

입력
2021.01.28 18:00
수정
2021.01.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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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언
최낙언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모소대나무' 이야기가 광고에 등장했다. 모소대나무는 4년을 가꾸어도 3㎝밖에 자라지 못하는데 포기하지 않고 잘 돌보면 5년째에는 어느 날 갑자기 하루에 30㎝ 이상 자라기 시작하여 6주 만에 15m 높이의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는 것이다. 과연 한순간에 그렇게 자라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나무가 비범한 속도로 자라는 것은 사실이다. 비온 뒤에 죽순이 하루에 1m 이상 자라는 것을 보고 '우후죽순'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다.

사실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나무처럼 부피 생장을 통해 점점 굵어지지 못하고, 죽순 단계에서 정해진 굵기를 그대로 키만 높이 자란다. 다년생 풀인 것이다. 유전적 분류상 잔디, 갈대, 벼, 보리, 밀, 사탕수수, 옥수수와 같이 벼과 작물이다. 이들의 잎이나 줄기가 모두 닮았고 사실 폭발적인 속도도 닮았다.

대나무가 빨리 자라는 데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는 다른 벼과 식물처럼 줄기의 속이 비어 있는 것이다. 속을 채우는데 양분을 쓰지 않으니 빨리 높이 자라서 햇빛을 차지할 수 있다. 둘째는 대나무는 땅속줄기로 연결되어 있어 아기 나무는 땅속줄기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점이다. 그리고 대나무는 각 마디가 동시에 자란다. 각 마디마다 성장점이 있어 동시에 자라니 하루에 1m가 넘게 폭발적으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폭발적인 성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것이 뜬 벼이다. 뜬 벼는 태국 중앙 평원, 메콩 델타, 갠지스 델타 등에서 자라는 벼인데 갑자기 폭우로 물속에 잠기면 벼가 줄기마다 대나무 자라듯 쑥쑥 자란다. 그래서 금방 물 밖으로 줄기를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 대나무 마디마디에서 뿌리가 자랄 수 있듯이 뜬 벼도 물위에 뜬 부분에서 뿌리가 자라 물과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벼과 작물의 폭발적인 성장력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은 풀이 아주 오래전 동물이 등장하기 전부터 지구에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활엽수에서 풀이 진화되어 나온 것은 불과(?) 3,000만년 전 정도로 추정한다. 식물을 먹는 동물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동물이 풀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수명이 길지만 번식과 성장 속도가 느린데 그 중에 일부가 오래 사는 버티기 전략 대신 빨리 자라고 빨리 씨앗을 맺어 빨리 번식하는 전략을 택해 진화한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압도적인 생산력의 해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칼로리)의 절반 이상이 곡식을 통해 얻은 것이고 그 중에 압도적인 것이 옥수수, 쌀, 밀이라는 벼과 작물이다. 사실 풀의 씨앗인 곡식을 주식으로 삼는 포유류는 인간밖에 없다.

그런데 대나무는 우리에게 벼나 옥수수처럼 씨앗은 제공하지 않는다. 씨앗은커녕 꽃이 피는 것조차 보기 힘들다. 대나무는 5년, 15년, 30년, 60년 심지어 120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사라지는 것도 있다. 원래는 다른 풀처럼 1년에 한 번 꽃이 피었다가 사라졌는데 언젠가 유전자가 고장나 빠른 번식의 사이클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100년에 한 번만 번식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줄기가 뿌리가 될 수 있는 번식력을 이용해 땅속으로 줄기를 넓게 뻗어나가 빈자리가 있으면 죽순이 돋는 식으로 거대한 집단을 형성한다. 그러다 수명이 다할 때가 되면 같은 해에 동시에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기고 사라진다. 한 번 대량으로 개화되어 동시에 씨앗을 대량으로 뿌림으로써 포식자가 있어도 다 먹지 못하고 번식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벼과 식물 중에 대나무는 그 단단하고 썩지 않는 줄기 때문에 과거에는 지금의 플라스틱의 역할을 했을 정도다. 모자, 그릇, 부채, 바구니, 빗, 화살, 상자 등등 대나무로 만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탕수수는 줄기에 가득 간직한 설탕 덕분에 사랑을 받았고, 옥수수가 압도적인 생산량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류가 되었다. 그리고 밀과 쌀은 많은 문명에 주식이 되었다. 인류는 이런 곡류 덕분에 농경시대를 열수 있었고, 한 곳에 정착해서 살 수 있게 되면서 문명이 본격적으로 창조되고 전승될 수 있었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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