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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유머의 작가 프랜 리보위츠와 뉴욕을 거닐다

입력
2021.01.30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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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풍자와 유머의 작가 프랜 리보위츠는 뼛속까지 뉴요커다. '도시인처럼'은 그가 깊이 사랑하는 도시 뉴욕에서 살아가면서 터득한 삶의 자세를 나눠주는 다큐멘터리다. 넷플릭스 제공

풍자와 유머의 작가 프랜 리보위츠는 뼛속까지 뉴요커다. '도시인처럼'은 그가 깊이 사랑하는 도시 뉴욕에서 살아가면서 터득한 삶의 자세를 나눠주는 다큐멘터리다. 넷플릭스 제공


글을 쓰고 그에 대한 보수인 고료로 생활을 꾸리게 되면서 갖게 된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는 일주일에 단 한 편의 칼럼을 쓰면서 뉴욕 한복판에 홀로 산다. 도대체 고료로 얼마를 받기에 그리 작지 않은 아파트에서 1인분의 삶을 꾸리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일까? 미국 신문사나 잡지사의 고료가 한국에 비해 높다든가 하는 식의 여러 가설이 있었지만, 시원하게 궁금증이 해소되지는 않던 차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을 보다가 정답을 듣게 되었다. 어림잡아 50년 이상 뉴욕에 살고있는 작가인 프랜 리보위츠는, 뉴욕의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하면서 살아가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도 8백만 명이 살고 있죠. 어떻게 아냐고요? 우리도 몰라요.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요. 일단 오면, 먹고 살 만큼은 벌면서 살 게 되더라고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을 맡은 '도시인처럼'은 어쨌든 뉴욕에서 살아가고 있는 1950년생 작가 프랜 리보위츠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인물 다큐멘터리이지만 프랜 리보위츠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내용도 아니며, 그의 일상이나 삶의 풍경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프랜 리보위츠가 뉴욕의 길을 걷는 모습 스케치 약간 외에는 오직 그가 말하는 장면으로만 에피소드 일곱 편, 총 3시간 23분의 분량을 채운다. 뉴욕에 관해, 문화와 예술 그리고 대중교통에 관해, 돈, 건강, 노화, 그리고 책과 도서관에 관해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이야기하는 프랜 리보위츠가 이 다큐멘터리의 전부다. 한 사람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도시와 그 도시의 미니어처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 그것도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종종 아름다운 장면을 만나게 되는 아주 재미있는 코미디 다큐멘터리가 된다.


뉴욕의 문화와 예술, 지하철, 돈 등을 7개 에피소드로 다룬 '도시인처럼'은 프랜 리보위츠식 뉴욕 안내서다. 넷플릭스 제공

뉴욕의 문화와 예술, 지하철, 돈 등을 7개 에피소드로 다룬 '도시인처럼'은 프랜 리보위츠식 뉴욕 안내서다. 넷플릭스 제공


이 다큐멘터리는 내가 넷플릭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테고리인 스탠드업 코미디와 흡사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농담의 핵심인 펀치 라인만은 횟수와 재미 면에서 최상급이다. 프랜 리보위츠가 학생이었던 시절 학교에서 ‘최우수 재치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잠시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왜 그런 상을 받았는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오직 웃음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프랜 리보위츠는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다.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현상을 분석하고 판단해 세상에 내어놓고,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늙어간다는 것, 그리고 세대에 대한 통찰이다. 프랜 리보위츠는 자신의 나이 전후 10년씩 20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 공유한 동세대를 제외한 다른 세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이 의견에 동의하며, 나는 대부분의 세대 갈등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를 대할 때, 이미 지나온 나이이기에 다음 세대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문제다. 경험의 측면에서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착각과 흡사하다. 자기 세대의 옛 경험으로 지금의 세상을 보는 방식을 강요하면서, 기성세대는 그렇게 '꼰대'가 된다. 하지만 프랜 리보위츠는 1950년에 태어났고,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이 살아가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대와 세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아이패드를 능숙하게 다루는 세 살이 미래세대의 모습인지를 묻는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은 얼마나 산뜻한가. "당신은 아니겠지만 그들에겐 그게 진짜예요."


'도시인처럼'은 프랜 리보위츠의 오랜 친구인 마틴 스코세이지(왼쪽) 감독이 연출했다. 넷플릭스 제공

'도시인처럼'은 프랜 리보위츠의 오랜 친구인 마틴 스코세이지(왼쪽) 감독이 연출했다. 넷플릭스 제공


프랜 리보위츠의 진짜 매력은 그가 노년의 레즈비언 여성이라는 점에 있다. 지혜와 관용을 가진 어른을 찾아 나서려는 언론과 방송의 꾸준한 노력의 반대편에서, 그는 소수자로서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을 이야기하고, 건강이나 돈과 같은 시대정신을 거부한다. 정확히는 현대 사회에서 추앙받는 가치에 대한 자신이 주류가 아닌 의견을 말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리고, 세상사에 대한 의견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받는 70대 여성을 보는 일은 신선한 즐거움이다.

내게 '도시인처럼'은 고료에 대한 고민보다 훨씬 오래 간직 중인 한 질문에 대한 답처럼도 다가왔다. 과연 나는 무사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비혼에, 수입이 불안정한 프리랜서 작가이며, 돈과 셈에 밝지도 않고,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온갖 사회 이슈에 말과 글을 얹으며 살아가고 있는 여성인 나는, 서울에서 어떻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최근 많은 노년 여성의 삶이 조명을 받고 있고, 나 또한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비혼 여성으로 창작 노동을 하고, 도시에 살면서 가능한 한 오래 이 일을 지속하며 나이 들기를 원하는 나를 비추어보기는 어렵다.


프랜 리보위츠는 노년의 레즈비언이다. '도시인처럼' 속 그는 여전히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70대 여성이다. 넷플릭스 제공

프랜 리보위츠는 노년의 레즈비언이다. '도시인처럼' 속 그는 여전히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70대 여성이다. 넷플릭스 제공


꼿꼿한 자세로 어깨를 펴고 한눈팔지 않고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돈 받고 글을 쓰기 전까지는 글을 쓰는 게 좋았어요. 그 이후로는 싫어졌죠"라고 말하곤 호탕하게 웃는 프랜 리보위츠를 본 순간, 나는 내가 70대를 맞이하게 된다면 저런 모습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는 곳도, 세대도, 작가로서의 명성도, 삶의 조건도 다르지만, 그와 같은 태도로 살고 싶다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세상을 향한 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내가 선택한 운명과 삶을 어쨌든 감당해나가고, 나의 취향과 가치와 경험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내가 아무리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한들, 그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업물을 예술로 향유하며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맥락과 상황에 대한 조금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포츠가 중요해진 건 남자들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통찰은 예리하지만, 나는 그 이유가 여성들에게서 다양한 운동의 경험을 어린 시절부터 차단해 여성이 스포츠를 좋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프랜 리보위츠와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평소의 말 상대가 마틴 스코세이지인 뛰어난 작가와 내가 토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의식 과잉일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어느 상황에서나 '나!'를 외치는 밀레니얼 세대가 아닌가.

무엇보다 이런 마음 자체가 그의 관점에 대한 열렬한 동의이기도 하다. 책을 포함해, 예술은 공감을 위한 거울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여는 문이어야 한다는 것. 공감과 동감은 예술의 최고 덕목이 아니다. 좋은 예술은 불편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틴 스코세이지와 프랜 리보위츠가 만들어낸 '도시인처럼' 역시 예술의 역할을 다한다. 게다가 마틴 스코세이지와 비슷한 포인트에서 함께 웃는 또 다른 방청객이 되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 또한 이 시대를 살면서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예술적 경험이다.


'도시인처럼'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예술로서 역할을 다한다. 넷플릭스 제공

'도시인처럼'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예술로서 역할을 다한다. 넷플릭스 제공


나보다 앞서 '도시인처럼'을 본 친구는, 프랜 리보위츠를 보며 내 생각이 났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말을 2021년의 도입에 들은 최초의, 최고의 칭찬으로 마음속에 간직해두었다. 물론 친구는 리보위츠가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수입 때문에 대출을 제한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를 떠올린 것이었지만 말이다. 조금 슬퍼지지만 아무래도 좋다. 다른 매력과 참조점은 내가 찾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프랜 리보위츠처럼, "언제나 재미를 추구"하고, 끊임없이 읽고, 생각하고, 그다음에 말하면서. 그가 70년 인생을 통해 대해 알게 된 삶의 단면을 30년 앞서서 지구 반대편에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게 되는 행운도, 이 세대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물론 안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마도 실수는 하지 않았으리라는 말 뒤로, 프랜 리보위츠는 이렇게 덧붙인다. "안타깝게도 실수는 계속됩니다." 그렇다. 내가 듣고 싶은 인생의 진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윤이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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