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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린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악기

입력
2021.01.27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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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2019년 1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마시모 자네티의 지휘 아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2019년 1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마시모 자네티의 지휘 아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인간의 목소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로 불린다. 성대에서 시작되는 공기의 파동은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인류는 이 악기를 통해 언어를 뛰어 넘는 감정을 전달해 왔다. 누구나 하나씩 소유한 이 악기는 저마다 음색까지 달라 더욱 특별하다.

때문에 합창이 동반되는 클래식 작품들은 관객에게 특별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등 다양한 성부가 조화를 이루는 합창의 아름다움 앞에서 관객들은 압도된다. 베토벤의 아홉번째 교향곡 '합창'은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연말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라는 가사는 위안과 기쁨을 준다.

하지만 합창은 클래식에서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장르이기도 하다. 공연 때 무대 위에 떠다니는 합창단의 비말은 물론,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습과정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대규모의 인원이 밀폐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연습과정도 순탄치 않다. 마스크를 쓰면 호흡에 큰 지장이 간다. 특히 빠르게 노래해야 하는 대목은 마스크가 입 속으로 딸려 들어와 노래하기도 쉽지 않다. 여러모로 코로나 시대엔 적합하지 않은 장르다.

지난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지만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무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2월 베토벤 '합창'을 온라인 생중계했던 서울시립교향악단은 편성을 대폭 축소시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사전에 전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심각한 탓에 올해 상반기도 합창을 동반하는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반기는 기대해 볼만하다. 우선 7월 경기필하모닉과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가 말러 교향곡 3번을 준비하고 있다. 말러 교향곡 3번은 어린이합창단까지 동원되는 대규모 작품으로, 역동하는 우주의 만물을 그려낸 곡이다. 5악장 '천사들이 내게 말하는 것'에서 어린이합창단은 관객을 잠깐 천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9월에는 경기필이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마찬가지로 100명이 넘는 대규모 합창단이 필요하다. '내 영혼이여, 너는 일순간 다시 부활하리라. 그대가 받은 고통, 그것이 그대를 신에게 인도하리라'라고 힘차게, 또 절박하게 노래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위암을 이겨내고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다시 무대에 오르며 선택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의 부제가 '부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오스모 벤스케가 취임 공연 작품으로도 골랐다.

12월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다시 우리를 찾아올 예정이다. KBS교향악단은 지휘자 피에타리 인키넨과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함께하고, 수원시립교향악단 역시 12월 상임지휘자 최희준과 함께 같은 곡을 무대에 올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빼앗아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이렇게 다시 무대에 등장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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