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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등의 과학기술정책

입력
2021.01.27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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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를 하는 앨런드라 넬슨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부실장. AP 연합뉴스

취임사를 하는 앨런드라 넬슨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부실장. AP 연합뉴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끝에 마침내 1월 2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내각은 미국 역사상 가장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5개 부처 장관, 백악관 참모, 기타 각료급 인선자의 상당수가 유색인종과 여성이며 일부 자리에는 성소수자가 지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각의 정책 기조에 있어서는 친기업 중도 노선의 민주당 주류를 대표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역시 당 주류에 적극 공조해 온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성향을 반영할 뿐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한 당내 진보파의 목소리는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행동단체 '선라이즈 운동'과 당 진보 그룹 '정의 민주당원들(Justice Democrats)'은 바이든 정부가 불평등의 심화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려면 문제의 근원인 기득권 정치·경제에 맞설 진보적 인사들을 내각에 선임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36명의 목록 중 내각에 지명된 이는 진보 성향의 원주민계와 흑인 여성 하원의원 뎁 할란드(내무부)와 마르시아 퍼지(주택도시개발부) 두 명에 그쳤다. 반면 세계 최대자산운용사 블랙록 출신을 포함한 친기업 인사들이 백악관과 행정부 요직에 대거 등용되면서 당내 진보파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눈길이 가는 것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인선이다. 전통적으로 과학기술정책실의 주요 직책은 과학자들로 채워져 왔다. 이번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저명한 유전학자 에릭 랜더를 과학기술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바이든 정부는 또 랜더 실장의 지위를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한편, 정책 결정 및 집행에서의 과학의 중요성과 미국 경제회복에서의 기술혁신의 핵심적 역할을 거듭 역설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여준 반과학적 행보와 차별성을 부각시킨 것으로 익히 예상되던 바였다.

의외이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회학자 앨런드라 넬슨의 과학기술정책실 부실장 지명이다. 넬슨은 민주당 주류가 채택해 온 과학기술관, 즉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이지만 과학기술의 상업적 응용은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을 촉진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학자다. 과학사회학자인 그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및 활용과 관련된 선택들이 사회의 권력관계와 구조적 차별을 반영할 수 있으며 이를 성찰하지 못한다면 선의에서 비롯된 과학기술이라도 불평등을 유지·확대하는데 기여할 위험이 있음을 여러 사례 분석을 통해 경고해 왔다.

넬슨은 취임사에서도 과학은 인간의 선택을 연루하는 사회적 현상이며 이 같은 선택이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게 함으로써 과학기술 발전이 평등, 책임성, 정의와 신뢰성의 가치에 부합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정의·평등을 지향하는 과학기술정책의 비전이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 주류의 친기업 노선 속에서 얼마나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정부, 여당, 보수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 일각에서조차 과학기술을 부국강병을 위한 힘과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우리 현실에서는 넬슨의 인선만으로도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부디 그의 의미 있는 시도가 성공하길 빈다.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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