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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못 미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입력
2021.01.25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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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갈등 현안 해소 위한 진솔한 입장 유보
경제ㆍ부동산 난맥 풀 비전도 제시 못해
명확한 메시지ㆍ결단으로 국정 풀어내야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리얼미터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직후인 지난 18~20일 국민 1,51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지난 21일 ‘중간발표’했는데,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전주보다 무려 5.7% 포인트 오른 43.6%로 반등했다는 내용이었다. 리얼미터는 기자회견이 여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냈다. 하지만 그런 분석은 기자회견이 대통령 지지도를 꽤 많이 회복시킬 정도로 좋았다는 평가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나는 이번 기자회견이 대통령 국정지지율을 높일 정도로 괜찮았다고 보지 않는다. ‘입양 아동 교체’ 실언 같은 걸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임기 후반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 대통령의 소신과 의지를 명확히 밝히는 무대가 돼야 했다. 만연한 국정 난맥상과 사회적 불안, 국민적 갈등을 해소하고 심기일전의 각오를 다지는 진심 어린 웅변이 나와주길 바랐다.

국가 지도자의 진정한 역할은 침체된 사회를 일으키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혀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힘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그랬다. 전쟁에 대한 공포로 민심은 가라앉고 국론이 분열됐던 그 때 처칠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우고 땅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사자후를 토해 냈다. 결단의 책임을 회피하기 않는 정치적 용기로 영국을 수렁에서 일으켰다.

문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국민적 혼란과 불안감을 씻어줄 명쾌한 메시지를 내지 못했다. 미증유의 국가 위기 속에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뜻을 모을 확고한 소신과 계획을 밝히는데도 안쓰러울 정도로 미흡했다.

문 대통령은 장기간 국론을 들쑤신 추미애ㆍ윤석열 대립에 대해 “송구하다”면서도 “장관과 총장 사이의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부분은 민주주의 일반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시비를 흐렸다. 감사원의 월성 원전1호기 감사에 대해서도 “정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정치적 목적의 감사를 해서도 안 된다”는 묘한 말을 덧붙였다. 그나마 선명한 입장을 낸 것 같지만,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정리하는 수준의 명확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부동산 답변도 그랬다. 대통령은 2019년 “집값을 취임 이전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송구하다”면서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어떻게 내릴지에 대해선 언급을 못했다.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자산증식을 겨냥한 다주택 보유와 투기를 끝까지 뿌리 뽑겠다”는 결의를 단호히 재확인하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특단의 공급책을 약속하는 선으로 물러선 듯한 인상을 주면서 시장이 개발호재로 또 들썩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수백 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길거리로 나앉을 수도 있는 위기는 “도와주면 좋은 것 아니냐”는 안이한 공공부조 메시지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경제 선방을 얘기할 게 아니라, 비상 경제대책의 각오가 필요했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나랏빚을 더 내서라도 코로나 팬데믹과 싸우는 재정, 금융, 소비활성화 대책을 천명함으로써 비전과 희망을 주는 결의가 표명됐어야 했다.

원칙 없이 막연하고, 왠지 뒤로 빼는 듯한 대통령의 유보적 메시지들은 대북정책부터 한일관계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청와대는 늘 “대통령의 진의를 헤아려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절박한 시기에 대통령의 헷갈리는 선문답까지 풀어내라는 과제를 국민에게 떠넘기는 건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명확한 메시지와 결단으로 올바른 국시(國是)를 모아나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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