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종주국으로 알려진 독일이 차량용 반도체 조달을 위해 대만 정부에 긴급구조신호(SOS)를 타전했다. 필수 부품인 차량용 반도체의 극심한 품귀 현상에 독일 정부 차원에서 대만에 직접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독일 정부로부터 SOS를 건네 받은 대만의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전문 업체 TSMC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 사례란 평가가 나온다.
25일 대만 언론과 미국 통신사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피터 알트 마이어 독일 경제부 장관은 대만 정부에 '자동차 칩' 생산을 늘려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특히 이 서한에선 독일 정부가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를 직접 지목해 "지금의 자동차 반도체 칩 부족이 독일 자동차 산업은 물론 세계 경제의 회복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만큼 이런 사정을 TSMC에 반드시 전달해 달라"고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스마트폰과 고성능 컴퓨팅(HPC) 반도체 생산이 주력인 TSMC의 차량용 반도체 비중은 3% 안팎으로 미미하다. 외신은 독일의 이번 서한과 관련, "TSMC가 자동차 칩 분야에서도 충분한 생산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는 걸 인정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수급 꼬인 자동차칩, 이유는?
이처럼 TSMC의 몸값이 상종가를 치고 있는 데는 요즘 급증세인 차량용 반도체의 인기와 무관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잠잠했던 자동차 수요 증가는 위생적인 측면에서 대중교통 보단 자가 차량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는 차량 1대에 대략 수백개씩 탑재된다. 각종 센서와 차 기능을 제어하는 반도체 등인데, 이런 차량용 반도체는 인피니언, NXP같은 기업들이 주로 공급한다. 이들 회사는 자동차 칩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맡아 온 종합 반도체 회사이다 보니, 굳이 자동차 칩 생산을 삼성전자와 같은 외부 파운드리에 거의 맡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차량용 반도체 회사들이 코로나19로 수요가 늘어난 컴퓨터(PC)와 스마트폰 등 가전용 반도체 수요 대응에 더 집중하면서 자동차 칩 공급이 확 줄었다. 뒤늦게 회복 중인 차량용 칩의 수급이 꼬이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지난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을 상대로 한 미국 정부의 제재도 부정적으로 작용됐다.
너도나도 TSMC에 SOS…한동안 품귀 현상 이어질 듯
더구나 자동차 칩은 8인치 파운드리(지름 8인치 웨이퍼로 반도체를 수탁생산하는 사업)에서 생산되는데, 8인치 파운드리에서 제작되는 반도체는 12인치 파운드리에서 만들어지는 반도체보다 부가가치가 낮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반도체 공급사는 8인치 사업에 수동적이다. 구조적으로 공급처가 제한적이란 얘기다. 최근 미국의 GM과 같은 완성체 업체는 물론 유럽연합(EU)까지 앞다퉈 대만의 TSMC에 SOS를 보낸 이유다.
올해 역대급 투자를 예고한 TSMC는 "자동차 고객과 긴밀하게 협력해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럼에도 차량용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TSMC가 증설을 추진한다고 해도 최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동차 칩 품귀 현상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거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완성체 업체들은 차 생산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아우디는 근로자 1만명을 휴직시킨 데 이어 포드는 내달 중순까지 독일 공장을 일시 폐쇄하기로 했다. 다만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아직까지 직접적인 생산 차질 사태까지 빚어지지 않았지만, 자동차 칩 공급 부족이 계속 이어지면 부품 가격 상승에 따른 공급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뜨는데, 국내 기업은 주목 못 끌어
최근 자동차 칩 부족으로 그간 이 분야에선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TSMC가 상당한 이목을 끌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사업을 하지만 8인치 제품 비중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자회사인 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가 8인치 파운드리를 주력 사업으로 하지만, 현재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중이다 보니 자동차 칩 수요에 대응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상당히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중국 공장이 갖춰지면 적극 대응할 의향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자동차 산업이 점점 전기차·친환경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매년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연간 400억 달러 규모의 차 반도체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7%씩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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