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뒤흔든 '여성 액션' 바람, 왜?
온몸이 무기다. 몸이 들어 올려지자 잽싸게 다리로 상대의 목을 졸라 반격했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이종격투기 선수처럼 싸운다. 늘 말보다 주먹을 앞세운 이들은 24일 종방한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 잡는 도하나(김세정)와 악귀 백향희(옥자연).
두 여배우의 격렬한 육탄전이 거듭될수록 극의 긴장감이 커졌다. 그 결과, 방송 내내 화제를 모은 건 남배우가 아닌 여배우들의 액션 연기였다. 도하나의 액션 연기를 압축한 5분짜리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100만건(25일 기준)을 돌파, K팝 아이돌 뮤직비디오처럼 인기다.
'발차기 잘하는' 캐릭터 부여... 달라진 여성 액션
새해 안방극장에 '여성 액션 바람'이 거세다. 남배우들이 독식했던 소방관, 전사 역 등을 이제 여배우들이 도맡으며 드라마 액션 장르를 주도하고 있다. 2월 방송될 JTBC '시지프스: 더 미스'와 넷플릭스 '스위트홈'에서 액션 연기를 책임지는 건 조승우와 송강이 아닌 박신혜와 이시영이다. 그간 액션 장르 주변부로 밀려나 보이지 않았던 여배우들이 중심부를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영화와 달리 '다모'(2003)를 제외하면 여성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매우 드물었던 것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권태호 '경이로운 소문' 무술감독에 따르면 대본엔 '날렵하고 발차기를 잘하는'이라고 도하나의 캐릭터 설명이 적혀 있다. 기존엔 간단한 손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설정이 많아 여성 액션에 특정 캐릭터가 부여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여성 액션 캐릭터가 구체화하면서 연기의 강도도 부쩍 세졌다. '시지프스'에서 박신혜는 대역 없이 건물 3층에서 뛰어내리면서 총을 쏘고, '스위트홈'에서 이시영은 바닥에서 맨몸으로 뛰어올라 오롯이 양팔 힘으로 천장 환풍기에 거꾸로 매달리는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 강단과 근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남배우들도 해내기 어려운 촬영이다.
양길영 '시지프스' 무술감독은 "예전엔 짧게 찍고 편집하는 카메라 트릭으로 여배우들의 액션을 부각했다면 이젠 리얼리티가 워낙 중요해지다 보니 원 신, 원 커트로 한 번에 길게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 위주로 촬영하고 있다"면서 "선이 아닌 투박함을 강조하는 게 요즘 여성 액션 흐름"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서 온 전사 역을 맡은 박신혜는 석 달여 동안 액션스쿨에 다니며 총술 등을 익혔다. 특수부대 출신 소방관 역을 연기한 이시영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씨름선수처럼 타이어 굴리기와 줄타기 운동을 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성난' 등 근육을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촬영 전 늘 팔굽혀펴기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씨름 선수처럼 운동...'여성판 추격자'도 드라마로
어떻게 여성 액션이 변화에 보수적인 안방극장을 뒤흔들게 됐을까.
새로운 여성 서사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성 액션도 '봄'을 맞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에서 여성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거나 액션 연기를 하더라도 남성을 보조하는 식으로 주로 그려졌다"며 "그 틀을 벗어나 여성이 사건의 중심에서 서고 더 나아가 직접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시대적 변화가 여성 액션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작자들은 ①가녀린 몸에서 뿜어나오는 용기와 힘이 주는 반전이 크고 ②모성으로 극적인 전개도 강화할 수 있어 여성 액션 중심 드라마를 더 발굴하고 있다. 김혜수 주연의 드라마 '하이에나'(2020) 등을 기획한 키이스트는 올해 '여성판 추격자'를 제작한다. 전직 경찰인 여성 탐정과 여대생 살인마의 접전을 그릴 액션 스릴러 드라마 '경이로운 구경이'다. 여성 탐정 역엔 한류스타 이영애가 물망에 올랐다.
'근육짤'로 인기 끄는 여배우들
여성 액션이 하나의 장르로 떠오르면서 여배우들은 액션에서 새길을 찾기도 한다.
'경이로운 소문' 종방 직전 본보와 서면으로 만난 김세정은 "액션 장면이 있는 날은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며 "점점 할 수 있는 동작이 늘어갈 때마다 희열을 느꼈고, 그럴 때마다 '아 액션 재밌다. 계속하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걸그룹 구구단 출신인 김세정은 요즘 인터넷에서 '근육짤(이모티콘처럼 쓰는 이미지)'로 새삼 인기다. 하지원의 뒤를 이어 액션 간판스타로 떠오른 이시영은 "액션으로 캐릭터를 얻은 게 배우로서 행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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