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일 대사 "화해치유 재단 잔금" 언급
위안부 합의 이행 제스처
피해자 중심주의 실체 의심 목소리 커질 듯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사법부 발(發) 한일갈등 뒷수습에 나섰다. 새로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는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치됐던 '화해·치유재단 잔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일본 외무장관 담화에 외교부, "위안부 합의는 공식합의" 입장문
일본은 23일 외무장관 담화를 통해 "국가는 국제법상 주권을 가진 서로 대등한 존재다.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한국 재판권에 복종할 수 없다. 한국에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 12명에게 일본 정부가 1억원씩 지급하라는 한국 사법부 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1심 판결 이후 한국의 재판권을 부정한다는 뜻에서 항소를 포기했고, 이에 따라 1심 판결은 확정된 상태다.
이에 외교부는 '한국 정부 입장문'을 내고 "우리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한일 정부 간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면서 "동시에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정부 간 합의만으로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선 일본에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나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를 막을 권리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위안부 합의를 인정한다는 정부 공식 입장은 8일 외교부 논평과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회견 등 최근 보름 간 세 번 반복됐다. 양국 정부 간 합의를 인정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사법부 차원의 피해자 판결과 정부는 무관하다고 재빠르게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강창일 대사, 화해·치유재단 잔금 활용 가능성 언급
강창일 대사는 한 발 더 나아갔다. 22일 부임 차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강 대사는 기자들과 만나 일본 정부 출연금이 투입된 화해·치유 재단 해산 후 기금이 남은 것을 거론하며 "양국 정부가 그 돈도 합해서 기금을 만드는 문제에 관해서 얘기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은 현재 해산된 상태지만,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106억원) 가운데 약 60억원은 남아 있는 상태다. 강 대사 발언은 이 60억원을 피해자들에게 마저 지급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결국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의견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사법부 판결과 일본 사이에서 정부도 더이상 갈 곳이 없어진 상태"라면서 "결국 2015년 위안부 합의로 180도 회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유화 제스처는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키고 파국을 피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해자와 국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는 등의 조치 없이 갑자기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을 바꾼 데 따른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그간 피해자 의견이 배제됐다는 판단에 따라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2017년 12월 문 대통령)"는 입장을 거듭 확인해왔다. 앞서 정의기억연대도 20일 수요시위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곤혹스럽다"는 발언에 대해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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