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 요건인 공연성, 엄격한 증명 필요"
친구와 단둘이 있을 때 제3자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근거로 험담했다면, 그 내용이 전파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유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이 사건은 2014년 어느 날, 박씨가 자신의 사무실을 찾은 친구 여모씨에게 A씨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불거졌다. 당시는 A씨가 박씨에게 전화로 “나와 사실혼 관계인 B씨(박씨 회사 직원)의 임금을 가불해 달라”고 요청하던 상황이었다.
통화를 막 마치고 나서 여씨는 박씨에게 ‘누구랑 통화했냐’고 물었다. 박씨는 “(A씨는) 신랑이랑 이혼했는데, 아들 하나가 장애인”이라며 “B씨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A씨한테) 돈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사실 통화는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A씨는 박씨와 여씨의 대화를 녹음한 뒤, “허위사실을 말해 내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씨를 고소했다.
재판의 최대 쟁점은 공연성(公然性)이었다. 불특정 또는 다수가 알도록 했을 때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데, 1ㆍ2심은 박씨 발언이 여씨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공연성을 인정했다. 다만 2심은 “전파 가능성 내지 공연성이 매우 크다고 보긴 어렵다"며 벌금 7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연성은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박씨가 허위사실을 말했을 때, 사무실엔 박씨와 여씨 둘만 있었다”며 “이는 공연성이 부정될 유력한 사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씨와 여씨는 친밀한 관계로 서로 비밀보장이 상당히 높은 사이일 것으로 보이는 점 △문제의 대화 이전에 여씨는 A씨를 전혀 몰랐던 점 등에 비춰, “여씨가 타인들에게 말을 옮길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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