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약 6,000억원에 달한다. 종이책 소설 시장의 2배가 넘는 규모다. ‘글은 돈이 안 된다’는 선입견을 깨고 콘텐츠 업계의 중추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학 문예창작과에서도 관련 수업을 속속 개설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소설과 한국 순문학은 여전히 서로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다. 웹소설은 순문학을 방구석에 처박힌 고독한 예술가로, 순문학은 웹소설을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소설 정도로 취급한다.
정무늬(39) 작가는 두 장르를 넘나들며 이런 편견을 깨는데 앞장서고 있다. 2016년 카카오페이지 콜라보 공모전에 당선되며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고 2019년에는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고전적인 순문학 등단 절차도 거쳤다. ‘세자빈의 발칙한 비밀’, ‘꿈꾸듯 달 보듬듯’을 비롯한 다수의 인기 로맨스 웹소설을 연재하는 동시에 순문학 문예지에 단편 소설을 발표한다. 나아가 ‘웃기는 작가 빵무늬’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업 비밀을 여러 지망생과 독자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 평택시 작업실에서 만난 정 작가는 “순문학이 클래식이라면, 웹소설은 K팝인 셈”이라며 “각자 가진 잠재력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사실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글과 그림 모두에 소질을 보였지만 글을 써서는 돈을 벌 수 없을 없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미대에 진학했다. 디자인을 공부해 먹고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학의 꿈이 놓아지지 않았다.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미술 학원에서 입시 강사 일을 했지만, 그게 ‘본업’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미술학원 강사, 캐디, 여행사 직원, 영어캠프 도우미 등 각종 일을 전전하면서 계속 소설을 썼어요. 여러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 최종심까지 갔었죠. 언젠가는 소설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버텼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버텨서 작가가 되면, 그 이후부터는 소설만 쓰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아니더라고요. 그때 마침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해를 품은 달' 같은 웹소설 기반 드라마들이 흥하고 있었어요. 웹소설을 쓰면 전업작가로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죠.”
‘돈을 벌어보겠다’는 뚜렷한 목적으로 뛰어들긴 했지만, 평생을 순문학만 훈련했던 터라 갑자기 전혀 다른 문법의 웹소설을 쓰기란 쉽지 않았다. 정 작가가 보기에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장벽은 ‘물성의 차이’였다.
“대개 웹소설은 휴대폰을 통해 소비돼요. 출퇴근하는 짧은 시간에 크게 집중하지 않고도 재미를 느끼길 원하죠. 그러다 보니 진도가 느리거나 주인공이 머뭇거리는 걸 못 참아요. 편당 가격도 100~200원 남짓이라 한 편 보고 재미없으면 바로 다른 걸로 갈아타면 되거든요. 무엇보다 독자의 ‘니즈’를 맞춰주는 게 최우선이 되죠. 반면 순문학 독자들은 대개 종이책으로 구매해요. 좋아하는 작가, 자신만의 취향을 바탕으로 신중히 고른 책을 시간을 들여 읽죠.”
웹소설 작가로 자리잡은 후에도 신춘문예의 문을 계속 두드린 이유 역시 “나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다. “웹소설에는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아요. 물론 독자를 만족시키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적절히 섞는 웹소설 작가들도 있지만 그게 일반적이지는 않죠.”
이처럼 전혀 다른 독자층과 지향점을 가졌지만, 정 작가는 그게 순문학과 웹소설이 서로를 배척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순문학은 웹소설을 하위 장르라고 여겨요. 반면 웹소설은 순문학을 백날천날 써봤자 아무도 안 읽는 소설이라고 비꼬죠. 하지만 순문학은 웹소설을 보며 독자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배우고, 웹소설은 순문학으로부터 클리셰에서 벗어난 다양성을 배워야 해요. 독자층도 교환돼야 하고요. 그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데 제가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