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제공 법무법인 사무장 진술 대필
축구협회 간부도 '커피숍' 회동에 동석
"자필이 증명력 높은데 대필 이해 안돼"?
재판부 "제3자 개입 가능성" 무죄 선고
정종선 전 고교축구연맹 회장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경찰 수사의 적법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 전 회장에 대한 경찰의 청부수사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수사 책임자와 서울시축구협회 간부, 법무법인 사무장이 '성폭행 피해자'의 진술서 대필에 가담한 사실까지 확인돼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재판부 "대필 이례적, 제3자 개입 가능성"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양철한)는 21일 정 전 회장이 서울 언남고 축구부 감독 시절 학부모를 유사강간 및 강제추행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이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부분은 피해자의 진술서 대필 과정이었다. 당시 정 전 회장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소속 최모 수사관은 공판에서 "피해자가 2019년 6월 13일 (성폭력피해자 수사·법률 지원을 담당하는) 서울해바라기센터에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상급자인 민모 경감 지시로 피해자를 커피숍에서 따로 만났다. 민 경감 지인(법무법인 사무장)이 피해자와 동행해 진술서를 대신 썼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피해자는 대필 진술서가 작성된 지 20분 후 해바라기센터에서 조사를 받았다.
22일 한국일보 취재결과 진술서가 작성된 커피숍에는 최 수사관 일행 이외에 민 경감과 서울시축구협회 간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법인 사무장은 서울시축구협회 간부가 제기한 정 전 회장 비리 의혹을 민 경감에게 제공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관련기사 ☞ 정종선 수사과정 '경찰 간부·제보자 유착' 정황 포착)
재판부는 '강제추행 이외에 추가 피해는 없었다'고 주장하던 피해자가 대필 진술서 작성을 기점으로 유사강간에 대해 진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진술서는 통상적으로 피해 당사자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접 수기로 작성한다"며 "피해자의 이례적인 진술 경위에 비춰보면 구체적 피해에 관한 진술내용은 스스로의 경험이 아니라 제3자로부터 의도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종선 첩보 제공 사무장이 대필
진술서를 대필한 사무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시축구협회 간부가 '피해자가 당시를 생각하면 손발이 떨려 못 쓰겠다고 하는데 형님이 대신 써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해서, 그 자리에서 피해자가 이야기하는대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경감도 "중요한 사건이라 직접 현장에 나갔지만 피해자는 보지 못해서 어떻게 진술서가 작성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며 "진술서가 남자 글씨 같아서 '왜 대필한 것이냐'고 사무장에게 물어본 뒤, 피해자 본인 진술이 맞다는 서명날인을 받게 한 후 접수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그러나 통상의 수사방식에 비춰볼 때 이 같은 진술서 대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자필 진술서는 증명력 자체가 훨씬 높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굉장히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오래 전 발생한 성폭행 사건인데다, 피해자 진술 이외엔 기댈 데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직접 진술서를 작성하는 것을 확인하고, 추가 조사를 통해 진술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지는 게 수사의 정석"이라고 지적했다.
정종선 전 회장 측은 성폭행 무죄 판결 이후, 대필 진술서 작성에 관여한 서울시축구협회 간부 등에 대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정 전 회장은 선고 직후 "(성폭행) 피해자를 알지도 못 한다. 서울시축구협회 간부가 사주해 경찰과 짜고 벌인 일"이라며 청부수사 의혹을 주장했다.
반면 피해자 변호인 측은 "당시 피해상황은 잊고 싶은 수치스러운 기억이기에 되살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 일반 형사사건 피해자와 같은 정도로 구체적 진술을 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피해자 측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2심에서도 정 전 회장 성폭행 혐의를 두고 양측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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