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나노 칩 생산 어려움
…"일부 제품에 파운드리 사용"
첨단 기술 양산 가능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 뿐
설계-생산 분리, 파운드리 시장 파이 커질 전망
'반도체 제국' 인텔이 차세대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위탁생산(파운드리) 방식을 도입한다.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 초미세 양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왔던 인텔이 경쟁사인 AMD에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파운드리 업체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인 협력 업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가 유력하다.
팻 겔싱어 인텔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21일(현지시간) 진행된 2020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텔은 공장에서 제조의 대부분을 유지하면서 현재보다 더 많은 외부 시설을 사용할 것"이라며 "인텔이 제공하는 특정 기술과 제품에 대해 외부 파운드리 사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날 인텔의 실적발표는 전세계 반도체 업계가 주목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수십년간 최강자의 자리를 지켜왔던 인텔이 위탁생산 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인텔은 자체적으로 칩을 설계·생산하고 판매하는 대표적인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하지만 수년간 인텔의 기술력이 정체되면서 신규 중앙처리장치(CPU) 생산이 계속 연기됐고, 그에 따라 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고객사가 이탈하는 사태를 겪었다. 인텔이 7나노미터 CPU 생산 일정을 2023년으로 늦춘 반면 AMD는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생산을 맡기면서 2019년 7나노미터 CPU를 출시했다. 결국 인텔은 30여년 간 근무하면서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올랐다가 2009년에 퇴사한 팻 겔싱어를 CEO로 구원투수로 다시 불러들였다.
인텔은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7나노 공정이 안고 있었던 문제를 회복했으며 제품 제조를 내부에서 진행할 것"이라는 원칙을 밝혔다. 이어 겔싱어 CEO가 정식 취임하는 다음달 15일 이후 구체적인 파운드리 활용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언급했다.
당초 업계가 기대했던 대규모 수주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텔마저 반도체 생산을 외부에 맡긴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반도체 업계가 설계만 집중하는 팹리스와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파운드리로 더 빠르게 분화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업계와 외신에선 인텔의 파운드리 파트너로 삼성전자와 TSMC를 꼽고 있다. 전세계 파운드리 업체 중 이 두 업체만이 10나노미터 이하 칩을 생산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1위인 TSMC가 인텔의 물량을 받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TSMC는 삼성전자와 달리 자체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 만큼 기술 유출 가능성도 적다. 최근 TSMC가 인텔 애리조나 공장 인근에 최신 반도체 양산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양 사가 이미 생산에 대해 합의를 이뤄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생산 안정성 측면에서 인텔이 TSMC와 삼성전자에게 각각 물량을 나눠 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세미어큐레이트는 전날 "인텔은 최근 삼성전자와 반도체 외주생산 계약을 체결했다"며 "인텔은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팹을 활용해 2분기부터 위탁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파운드리, 이미지센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1위 자리에 오른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삼성전자에게 이번 인텔 수주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파운드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TSMC와 함께 물량을 나눠가지는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텔 입장에서는 TSMC의 독점 계약 보다는 삼성전자와의 듀얼 벤더 활용방안이 주는 장점에 주목했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TSMC의 애리조나 팹이 2023년에나 준비되는 만큼 2021~22년 공백기의 미국 본토 협력사가 필요 했으며, 다중 위탁생산에서 오는 경쟁적 가격협상력 획득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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