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김영란법만 유죄 인정해 벌금형 선고
정씨 "성범죄 당했다는 여성 얼굴도 몰라"
축구부 운영비를 횡령하고 학부모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정종선(55) 전 고교축구연맹 회장이 1심에서 대부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양철한)는 정 전 회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업무상횡령, 유사강간,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약했던 정 전 회장은 서울 언남고 축구부 감독으로 재직하며 2015~2019년 학부모들로부터 축구부 운영비 등을 명목으로 약 2억2,3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또 축구부 학생 모친을 상대로 2회의 강제추행과 1회의 유사강간 등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 축구부 학부모 후원 총무를 맡던 박모(50)씨로부터 성과급 명목으로 5회에 걸쳐 800만원씩을 받아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먼저 재판부는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 “실제 축구부 운영을 위해 원래 용도로 지출된 것으로 보이는 금액이 2억여원의 거의 절반”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머지 부분도 대부분 개인적 용도로 쓴 뒤 총무 박씨와 사후에 정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성범죄 혐의 부분에서 피해 주장 학부모의 진술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 경위에 대한 피해자 진술이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화되거나, 최초 진술과 내용이 상당히 달라지는 양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해바라기센터(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해 상담·의료·법률 지원을 하는 곳)를 찾기 직전 제3자가 피해 진술서를 대필해 준 정황 등에 비춰볼 때 “구체적 피해를 스스로의 경험에 따라 진술한 것이 아니라, 제3자로부터 의도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피해자들을 대리한 변호인단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재판부의 성폭행 혐의 무죄 선고를 비판했다. 변호인단은 "대법원도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이상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사이비교주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 전 회장의 악행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성폭행 피해를 털어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청탁금지법 입법 취지 등을 살펴볼 때 액수가 많은 수준”이라면서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받은 것일 뿐이어서 일반인의 윤리 감정에 반하지 않는다는 정 전 회장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해 온 정 전 회장은 선고 후 기자들을 만나 “경찰 수사가 시작될 때 핵심은 스카우트 관련 돈 문제였는데, 그게 안 되니 갑자기 대학 특례입학, 횡령, 갑질 등으로 수사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9년 6월에는 갑자기 성추행 얘기가 나왔다”면서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의 얼굴을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현재 경찰의 정 전 회장 수사 과정에서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소속 간부와 제보자 간의 부적절한 유착 정황을 포착해 사실관계를 살피고 있다. 앞서 대한축구협회는 경찰 수사로 정 전 회장의 횡령·성범죄 의혹이 불거지자 2019년 8월 그를 영구제명 조치했고, 이후 대한체육회가 제명을 확정하면서 정 전 회장은 축구계에서 퇴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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