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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서초동 권력투쟁

입력
2021.01.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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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박범계(왼쪽 두 번째)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건물은 대검찰청 청사. 연합뉴스

박범계(왼쪽 두 번째)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건물은 대검찰청 청사.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초, 사내 인사 이동을 통해 오랜만에 돌아간 ‘서초동’의 공기는 너무나 생소했다. 대법원과 대검찰청, 서울고검ㆍ중앙지검, 서울고법ㆍ중앙지법이 몰려 있는 ‘법조타운’ 서울 서초동에선 굵직한 뉴스가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당연히 대부분은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이다. 그런데 작년은 달랐다. 특히 검찰 수사를 취재하고, 관련 기사를 쓰는 일이 부쩍 줄었다. 세간의, 언론의, 무엇보다 검찰의 최대 관심사는 ‘수사’가 아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20년 서초동을 집어삼킨 사안은 이른바 ‘추-윤 갈등’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 발동, 감찰, 징계 청구 등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윤 총장도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꺼내 들어 맞섰다. 이들의 싸움은 지난달 24일 “검찰총장 징계 처분의 효력을 중단한다”는 법원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추 장관은 불명예 퇴임을 앞둔 반면, 윤 총장은 올해 7월 임기 만료 때까지 계속 자리를 지킬 것이다. ‘상처뿐인 승리’라 해도, 어쨌든 윤 총장이 이긴 건 맞다.

그러나 이 사태를 두 사람의 대결 구도로만 바라봐선 안 될 듯하다. 그보다는 검찰 내부의 권력투쟁이 ‘수면 위에서’ 벌어졌다는 데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친(親)정권 성향으로 알려진 이성윤 검사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은 ‘검언유착’ 의혹 수사 과정에서 상급기관인 대검의 결정에 공개 반발했다. 다른 사안에서도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엇갈린 입장문이 종종 발표됐다. 흔치 않은 일이다.

심지어 동일 기관, 동일 부서 내에서 상대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모습도 비일비재했다. 취재를 위해 사실관계를 물으면 간부들은 ‘추미애 라인’ ‘윤석열 라인’으로 패가 갈려 서로를 거침없이 힐난했다. 하급자는 직속 상급자를 ‘정치검사’라고 했고, 상사는 부하를 ‘거짓말쟁이’로 깎아내렸다. 그래도 기자들 앞에선 동료 검사 비판을 최대한 자제하던, 불과 몇 년 전 풍경과는 딴판이었다. 서초동 공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다.

선후배 검사에게 일침을 가하는 검찰 내부통신망 게시글도 크게 늘었다. 합리적 지적이 많았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이나 PD수첩 사건, 국가정보원 증거조작 사건, 세월호 수사 외압 등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셌을 때, ‘내부 반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탓이다. “왜 과거와 비교만 하나. 그때 침묵했다고 계속 침묵하라 하면 미래도 똑같아진다”는 현직 검사의 충고에 생각을 고쳐 먹긴 했지만, ‘순수한 정의감의 발로’ ‘자유로운 의견 표명 활성화’ 등 긍정적 의미로만 해석해야 할지 여전히 확신은 들지 않는다.

결국 이 같은 현상은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삼은 추 장관의 ‘편 가르기’ 인사로 검찰 내 주류세력이 바뀌는 지각변동이 촉발한 부산물로 읽힌다. 검찰 내 권력투쟁의 본격화를 보여준 신호라는 뜻이다. 물론, “검찰총장과 협의해 좋은 인사를 하겠다”고 공언한 박범계 후보자가 신임 법무부 장관에 오르면 눈에 보이는 법무부-대검 간 대립은 줄어들 공산이 크다. 그러나 모든 조직이 언제나 그렇듯, 물밑의 ‘암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권력투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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