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전망하는 바이든시대 (1) 윤덕민?전 국립외교원장
한반도 비핵화 시계가 멈춘 사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4년의 막이 올랐다. 바이든 시대를 맞은 한반도 정세는 간단치 않다. 북미 간 마지막 비핵화 합의인 2017년 싱가포르 합의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미관계 경색으로 공중에 떠버렸고, 남북관계는 말조차 섞기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엎어진 협상판을 어디서부터 다시 세워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 채널부터 조정하는 게 먼저"라고 조언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 식 협상을 그대로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그간 협상에서 소외된 외교부 장·차관과 실무급 대미 외교라인부터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이틀 뒤인 20일 청와대는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에 지명하는 등 외교라인 개편 인사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행정부에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할 것을 당부한 데 대해서도 "하수의 접근법"이라고 일침을 놨다. 국무부 요직에 토니 블링컨과 웬디 셔먼 등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한과 좋지 않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배치됐는데, 트럼프 시절 멈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 자체가 경솔했다는 지적이다.
윤 전 원장은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다시 진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한미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문 대통령을 믿은 게 아니라 한미관계를 믿었던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간 관계가 느슨할 경우 김정은도 더이상 남측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반도정책에 관여할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윤곽을 드러냈다. 어떻게 평가하나
"염려했던 라인업이다.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토니 블링컨이나 부장관에 지명된 웬디 셔먼, 아시아 차르 지명된 커트 캠벨 모두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북한과의 협상 자체를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이들이 트럼프 시절 톱다운(Top-down)식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긴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바이든 시대를 맞아 우리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대화 채널의 높낮이부터 조정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당시 정상급 소통에 기댔던 소통 채널을 다시 정통 외교관 그룹인 국무부로 옮길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에 발 맞춰 외교부 장·차관을 시작으로 대미 외교라인업을 재정비해야 한다. 외교는 결국 네트워킹이 핵심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8년 간 쌓인 외교부의 대미 네트워킹이 현 정부 초기 적폐 청산으로 붕괴되다시피 했다. 지금부터라도 정통 외교관 그룹의 대미 네트워킹 복원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간 대미협상 라인을 유지할지 바꿔야할지 북한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김정은-트럼프 간 싱가포르 선언의 계승을 주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수용할까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채택된 북미 코뮈니케의 예를 들자. 김대중 정부는 클린턴에 이어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북미 코뮈니케과 햇볕정책 이행을 요청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 사람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다니"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미 트럼프 식 대북접근법에 대한 회의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온 신 행정부에게 '트럼프 시절이 좋았다, 그대로 가자'고 하는 것은 하수의 접근법이다."
-임기 후반부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나
"바이든 행정부와의 신뢰 구축이다. 남북관계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은 자신의 입장이 한국을 통해 미국으로 잘 전달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한미관계가 충실해야 북한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선 바이든 행정부와의 신뢰를 구축하는 게 먼저다."
-바이든 행정부 시대에서의 북핵 협상은 어떤 양상을 띨 것으로 보나
"북핵 문제가 미국의 최대 위협이라 해도 정작 비핵화로 이끌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단,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라인에 군축론자가 많은 것을 고려했을 때 결국은 이란 핵합의(JCPOA)식 합의를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핵동결 협상을 한 뒤 최종적 비핵화를 향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북한으로선 속으로 웃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북한이 속으로 웃을 수 있다는 뜻은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점에서 이란과는 또 다르다. 즉 군축 협상이 열리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북제재 해제는 비핵화 과정의 후순위에 둬야 한다. 비핵화 프로세스 초반에 제재를 해제할 경우 최종적인 비핵화를 유인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전략도발을 감행해 온 패턴은 또 반복될까
"8월 한미연합훈련이 고비다. 상반기(3월) 훈련을 고비라고들 점치지만, 북한도 바이든 행정부에 일정한 시간은 줄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기류를 살피면서 필요하다면 하반기 훈련을 명분 삼아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 남북 간 훈풍 시나리오를 짜둔 듯 한데
"북한이 따라줄지가 의문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역할을 믿었다가 낭패를 봤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평창올림픽을 출발점으로 한 대화 정국으로의 전환을 또한번 재연해보자는 남측 제안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욱이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 도쿄올림픽보다 내년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기회가 더 커 보인다."
-동맹주의를 앞세운 바이든 행정부로선 한미일 3각 협력체제 복원을 다그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한일 간 위안부합의 협상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못잖게 일본도 압박했다.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다름 아닌 전시 여성 인권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 편을 들어주긴 어려웠다. 반면 지금은 다르다. 강제동원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달리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해결됐다고 보는 기류가 강하다. 위안부 문제 역시 마냥 한국 편을 들어주긴 어렵다. 피해자 개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 소송을 걸 수 있다면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 판결을 얻어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막후에서 일본을 압박했던 오바마 때와는 환경 자체가 다른 셈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