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쓰러진 한진택배 기사 여동생 기자회견
산재신청 위해 오빠 근무시간 요청했으나 거절
심야노동금지 알면서도 지시·은폐 카톡에 남아
"배송구역·물량 조정도 현실과 동떨어진 약속"
"오빠는 한진택배 회사명이 새겨진 차량을 몰고 늦은 시간까지 배송업무를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이 책임을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18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한진택배 기사 김진형(41)씨의 여동생 김모(39)씨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여동생 김씨는 회사 측이 오빠의 산업재해 신청에 필요한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형씨는 지난해 11~12월에 하루 17시간씩, 새벽 6시까지 배송하는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배송 도중 쓰러진 사실이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김씨는 현재 네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이 없는 상태다. 한진택배가 작년 11월부터 오후 10시 이후 심야배송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여동생 김씨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재해사실확인서 작성을 위해 오빠가 근무했던 집배점(대리점)에 근무지역과 출퇴근시간 등의 자료를 요청했지만, 집배점은 "외부에 유출하면 집배점에 책임을 묻겠다고 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올초 서울 금천구의 한진 물류센터를 직접 방문했지만 "개인정보라 제공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족인데도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물류센터 담당자는 "기사 본인이 직접 요청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의식 불명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오빠가 어떻게 자료를 직접 요청할 수 있느냐"며 "열람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대책위는 "한진은 근로복지공단의 요구에도 지난해 10월 과로사로 숨진 서울 신정릉대리점 소속 택배기사의 자료 역시 아직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진택배가 약속한 택배기사의 심야노동 금지가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책위가 공개한 김진형씨 단체 카카오톡에는 대리점에서 기사들에게 '10시 다 되어가요. 완료처리 못한 분은 완료처리 부탁합니다' '지금 이 정책이 한진이 문제가 아니라 10시 이후 완료건들 퍼센테이지로 위로 보고되나봐요' '소장님(대리점장) 어제 운영팀 올라가서 회의 때 엄청 뭐라고 하더래요' 등의 내용을 보낸 기록이 있었다. 오후 10시가 가까워지면 배송을 안 한 물건도 스캐너로 일단 배송완료 처리한 뒤 밤새 남은 물량을 배송하는 일이 벌어졌고, 대리점이나 회사 측은 이를 뻔히 알면서 은폐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다.
택배기사들이 힘들면 물량과 구역을 줄일 수 있다고 택배업체에선 말하지만, 이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대책위가 공개한 김진형씨와 대리점간 계약서에는 '을(김씨)은 계약해지시 일일내 후임자를 선정해 투입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을은 갑(대리점)에게 모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후임자가 없으면 모든 비용을 기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불공정한 내용이 버젓이 적시된 것이다. 여동생 김씨는 "오빠는 작년 10월 말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겠다고 밝혔으나, 후임자 2명이 일을 못 버티고 나가서 결국 관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여동생 김씨와 대책위는 하영권 한진택배 운영담당상무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산재 신청을 위한 자료제출을 서둘러달라는 요청에, 하 상무는 "최대한 빨리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이날 택배기사 과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27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해, 설 명절을 앞두고 택배 대란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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