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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다시 현장이다

입력
2021.01.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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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7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 캠프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9월 17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 캠프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개봉한 영화 ‘미스터 존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신문기자인 주인공이 참혹한 우크라이나 대기근 현장을 생생히 취재하는 모습이었다. 먹을 게 없어 사람들이 죽는 모습과, 살기 위해 인육까지 먹는 모습은 스탈린이 선전한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자는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그리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 동기가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숭고한 사명이든, 저널리스트로서의 특종 욕심이든, 중요한 것은 그는 현장에 있었고 기록을 했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1932년과 현재의 언론 환경은 큰 차이가 있지만, 기자가 현장을 지키고 현장을 찾아야 한다는 점은 시공을 초월한 명제다.

2017년 9월 존경하는 후배기자가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방글라데시 남부 로힝야족 난민캠프를 찾았다. 미얀마 정부의 인종청소로 로힝야족 수십만 명이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었다. 난민캠프는 눈물과 굶주림, 죽음의 그림자로 범벅이 된 생지옥이었다. 그들이 미얀마에서 겪었던 학살과 강간, 방화 피해는 그대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후배기자는 너무 처참해 신문과 온라인엔 차마 싣지 못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처음엔 망설였는데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고 말했다.

르포 기사를 쓰기 위함이 아니더라도 기자가 현장을 지켜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택배기사의 살인적 업무도, 경비노동자를 향한 갑질도, 청소노동자의 투명인간 같은 삶도 현장 속에서 느껴야 인사이트가 생기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방배동 모자의 비극도, 정인이 부모의 아동학대도, 비닐하우스 속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도 현장 취재경험이 축적돼 있었다면 조금이나마 예방하고 경고하는 기사들이 나왔을 것이다.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언론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기업인들이 신년 화두로 입에 닳도록 외치는 말이자 본인이 실천하고 직원들에게 주문하는 말이 현장경영이다.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직원들을 만나고 하청업체를 방문한다. 시장과 군수도 문제점을 점검하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사업 현장을 찾는다.

그럼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묵직하게 현장에 지키는 언론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기자들 숫자는 분명 늘어나고 있는데, 현장에 집착하는 기자들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기자들이 낯설다 보니, 현장엔 답이 없다고 외치는 언론인까지 생겨났다.

하긴 요즘 기자들은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누군가 떠든 말을 받아 쓰고, 유명인사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쳐다보면서 기사를 써야 한다. 보도자료가 나오면 먼저쓰기 경쟁을 하고, 속보를 놓치면 질책을 들어야 한다. 현장은 기사의 형식적 완성미를 더해주는 소품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코로나19로 기자들의 활동 반경이 좁아지면서 현장의 의미는 더욱 퇴색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기자들보다 먼저 현장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탁상공론이란 말이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나오는 걸 보면, 일부 공직자는 아예 현장을 버린 것 같다. 탁상공론이 기자들의 대명사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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