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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썰매를?… '야만의 기억' 옅어져가는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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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썰매를?… '야만의 기억' 옅어져가는 독일

입력
2021.0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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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방문객 희생자 무덤에서 썰매 등 타
기념관 측 "희생자에 존경심 보여야" 호소
세월 흐르고 극우 부상 탓 역사의식 훼손

2019년 4월 독일 바이마르 부헨발트에서 나치 강제 수용소 해방 74주기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바이마르=EPA 연합뉴스

2019년 4월 독일 바이마르 부헨발트에서 나치 강제 수용소 해방 74주기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바이마르=EPA 연합뉴스

나치 지배 시절 5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온 독일 최대 집단 강제수용소에서 일부 방문객들이 썰매와 스키를 타는 몰지각한 행동을 해 기념관 측이 보안 강화에 나섰다. 최근 나치 역사를 부정하거나 대학살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지는 등 거세지는 극우주의 흐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16일(현지시간)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이마르시에 있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기념관 측은 최근 경비를 강화했다. 희생자 무덤에서 터보건(좁고 긴 산악 썰매)이나 스키를 타는 방문객들이 다수 목격됐기 때문이다. 기념관 측은 페이스북 성명을 통해 “숨지 이들을 존경하고 장소의 존엄성에 맞는 태도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대학살의 주된 표적이던 유대인뿐 아니라 나치 반대 세력, 나치가 주장한 반사회적 인사, 집시 등을 마구잡이로 감금한 독일 최대 인권 말살의 현장이었다. 1937년 7월 가동을 시작했는데 생체실험과 고문, 강제 노동 등 각종 유린이 자행돼 5만6,0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곳에는 기념관과 박물관이 들어 서있다. 일부 관람객들은 수천명의 희생자 유해가 자리한 종탑 비탈 끝 묘지에서 놀이를 즐겼다. 옌스 크리스티안 바그너재단 이사는 슈피겔에 “지난 주말 기념관 주차장은 관람객이 아니라 동계 스포츠 애호가들로 꽉 찼다”고 한탄했다.

2018년 4월 독일 바이마르 부헨발트 수용소 해방 73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온 한 생존자가 희생자들 추모하고 있다. 바이마르=AP 연합뉴스

2018년 4월 독일 바이마르 부헨발트 수용소 해방 73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온 한 생존자가 희생자들 추모하고 있다. 바이마르=AP 연합뉴스

아픈 역사의 현장을 거리낌 없이 놀이 장소로 택한 것은 우선 독일 젊은층을 중심으로 ‘야만'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탓이다. 이제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만행을 증언할 수 있는 생존자가 드물고, 여러 세대가 지나오면서 추모 의식도 크게 옅어졌다. 바그너 이사는 “오랜 세월이 흘러 역사적 감수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극우주의의 부상도 대학살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독일 내 홀로코스트 추모 장소들은 최근 신(新)나치와 백인 민족주의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념관 방명록에 나치 역사를 부정하는 글을 남기는 방문객도 부지기수다. 폴크하르트 크니게 전 부헨발트 수용소 대표는 지난해 “‘강제수용소가 독일인에게 합리적’이라는 방명록 메시지가 종종 발견된다”며 “부헨발트가 신나치들의 원치 않는 방문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이 곳에서 나치식 인사를 하는 영국인 2명의 사진이 영국 신나치단체 ‘국가행동’ 트위터에 노출돼 현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적도 있다. 당시 수용소 지하 화장터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과거 수용자들의 교살이나 시신처리에 이용된 도구를 가리켜 ‘고기를 매달아놓는 갈고리(Meat Hooks)’라는 글귀가 적혀 국제사회의 분노를 자아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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