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심야배송·분류비 부담 여전
19일까지 대책요구… 설 전에 파업 예고
'까대기' 책임 명시 않으면 '껍데기 약속'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지난해 추석에 이어 설 연휴(2월11~14일)를 앞두고 다시 총파업을 예고했다. 택배기사 과로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까대기(분류작업)' 부담이 여전해 '과로사 참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조는 이달 19일까지 과로 방지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20~21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27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파업에는 CJ대한통운, 우체국, 한진, 롯데, 로젠 등 5개사 조합원 5,50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보여,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설 배달 대란이 우려된다.
노조가 가장 문제 삼는 부분은 택배업체들이 분류인력을 투입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업계 1위 CJ대한통운이 기존 1,000명에 3,000명을 더해 4,000명의 분류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한진과 롯데도 각각 1,000명을 투입하겠다며 동참했다.
그러나 노조에 따르면 롯데의 경우 지금까지 투입된 분류인력은 60명에 불과하다. 한진은 작년 말 기준 300명을 투입했다고 했지만 실제론 이를 훨씬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 이후 과로로 쓰러지거나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기사는 5명인데 모두 한진과 롯데 소속이다. 노조는 "쓰러진 택배노동자들의 택배 현장에는 단 한 명의 분류인력도 투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진은 작년 11월 이후 심야배송(오후 10시) 금지를 선언했지만 서울 동작구의 한진택배 기사가 하루 17시간씩, 새벽 6시까지 배송하다가 작년 말 뇌출혈로 쓰러지는 등 이 약속 역시 공염불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CJ대한통운은 한진이나 롯데와 달리 택배노동자 보호 조치를 적극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투입된 분류인력은 3,078명. 그러나 강민욱 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이 중 730여명은 2회전(하루 두 번 배송)을 위해 한참 전부터 고용된 인력이라 분류작업과 직접 관계가 없다. 또 작년 추석 때 이미 투입됐던 인원 300여명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새로 투입된 인력 중에서도 근무시간이 짧아 노동 단축에 큰 효과가 없다는 반응이 많다"고 비판했다. CJ대한통운 측은 그러나 "현장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근무가 이뤄지는 걸 노조가 왜곡하고 있다"며 "종합대책 발표 이전에 투입된 인력도 전체의 24%(759명)뿐"이라고 해명했다.
분류비용이 택배기사에게 전가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택배업체들은 작년에 분류작업을 온전히 책임질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상은 이 비용을 각 대리점(집배점)과 나눠 부담하고 있다. 택배업체보다 더 많은 분류비용을 떠맡은 대리점도 적지 않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진경호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원청(CJ대한통운)이 분류비용의 30%만 부담하고 70%를 대리점에 전가시키고 있다"며 "대리점들이 이 비용을 충당하려고 택배기사에게 받는 수수료(관리비)를 인상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이에 대해 "집배점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분류비용의 평균 60% 이상을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택배업체들이 분류작업을 자신들의 몫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 같은 '껍데기 약속'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작년 추석 연휴 직전에도 택배기사들은 물량 증가로 과로사가 우려된다며 분류작업을 중단하겠다는 부분파업을 선언했다. 정부가 택배업계와 논의해 하루에 2,000여명의 분류인력 투입을 약속했고 파업은 철회됐지만, 당시에도 제대로 인원이 투입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조는 해결책으로 집배점과 택배기사간 표준계약서에 분류작업에 대한 사측 책임을 명시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노사, 국회, 정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택배업체 반대로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설 명절을 앞두고 물류대란 등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19일 사회적 합의기구 5차 회의에서 합의 유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 몫이고 택배업체는 인력과 비용만 보충해주면 된다는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며 "재계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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