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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서 찾은 '트럼프 감별법'

입력
2021.01.15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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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다'는 솔깃한 말과 레토릭
민주주의 과신한 오판이 부른 트럼피즘
분노와 광기에 휩싸인 미국 비참함 불러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의 웨스트윙(서관) 입구에서 해병 2명이 경비 임무 교대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백악관의 웨스트윙(서관) 입구에서 해병 2명이 경비 임무 교대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1년 1월 20일, 미국 백악관 주인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다. 그런데 세계의 관심은 새 주인이 될 조 바이든의 취임식과 취임사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에서 물러나지만 워싱턴 정치에서 퇴장하지 않을 도널드 트럼프에 가 있다. 그가 연방하원에서 가결된 탄핵소추란 오명을 쓴 채 역사의 장으로 사라질 것이란 기대는 오산으로 보인다. 적어도 지지자들에게 트럼프는 여전히 승리를 빼앗긴 대통령이다.

극렬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은 그 대오를 잠시 고립시켰지만 트럼피즘이 위축되진 않을 것 같다. 트럼프 지지단체들은 취임식 날에도 100만명 민병대 행진을 예고한 상태다. 제2의 의회 난입과 같은 사태를 우려해 군이 투입됐지만, 어쩌면 20일은 민주적 제도와 트럼프 세력이 충돌하는 날로 기록될 수도 있다. 당분간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트럼피즘은 미국 사회 유령으로 남아 발목을 잡을 우려가 크다.

워싱턴은 트럼프의 대선 재출마를 막을 ‘트럼프 방지책’을 찾고 있지만 아직은 회의적이다. 의회 권한으로 공무담임권을 일정 기간 박탈할 수 있겠으나, 공화당 의원들은 여전히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눈치 속에 있다. 하원의 트럼프 탄핵소추에 찬성한 공화당은 불과 10명이지만 트럼프의 선거불복 주장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은 148명이나 된다. 자신들처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은 보수층 여론도 큰 이유다. 14일 공개된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 64%가 최근 트럼프 행위를 지지하고, 57%는 2024년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의 탄핵에는 17%만이 찬성했다.

트럼프를 반면교사 삼은 제2, 제3의 트럼프가 될 싹을 찾는 건 교훈적이다. 많은 경우 민주주의의 위기는 무지에서 시작되곤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 4년 뒤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은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었다. 4년 전 슈피겔은 그가 한 손에 피가 흐르는 자유의 여신상 머리를 잡고 다른 손에 칼을 들고 선 그림을 커버로 다뤘다. 트럼프 당선이 곧 자유의 사망이자 미국의 비참함을 의미한다는 메시지였다.

불길한 예측의 실마리는 그의 말에 있었다. 초등 4년 수준으로 말하는 그에게서 모든 문제는 아주 쉬워 보인다. 앞선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예스, 위 캔’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했지만, 트럼프는 ‘예스, 아이 캔’이라고 했다. ‘나에게 전권을 달라, 그러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독재자들의 장담이었다. 보다 위험한 건 그의 화려한 레토릭이었다. 트럼프는 민주적 과정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에 정작 그 제도와 절차를 불태워야 한다고 했다. 제도 개선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가 없다며, 초법적 행동이 정당하다고 했다. 트럼프의 특이점에는 양심, 선량함의 부족도 있었다. 경쟁자들을 향한 모욕은 정계 은퇴 감이었지만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용기 있는 지도자의 증거였다.

트럼프 현상의 보다 큰 책임은 민주주의에 대한 과신에 있었다. 미국은 강력하고 제도와 규범이 고착돼 아무리 트럼프라도 나라를 멋대로 끌고 가진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미국 예외주의는 그러나 지금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아니었다면 벌써 수많은 폭력 사태를 겪었겠지만, 그런 미국마저 분노와 광기의 트럼프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분명해 보인다.

바이든은 세계에 '아메리카 이즈 백(미국이 돌아왔다)'을 선언했지만, 세계는 그러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정치 분열이 언제 끝나느냐 묻고 있다. 하지만 대답은 바이든의 몫이 아닐 수 있다. 퇴임을 앞둔 트럼프가 권력의 덧없음을 독백한 맥베스 처지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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