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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아동학대'에 발칵… 더는 미성년 성범죄 관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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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아동학대'에 발칵… 더는 미성년 성범죄 관용 없다

입력
2021.01.15 05: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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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의붓아들 강간한 유명 정치학자 이어
토크쇼서 "동의 있었냐" 물은 철학자까지 퇴출

전날 자신이 진행하는 프랑스 TV 토크쇼에서 유명 정치학자 올리비에 뒤아멜의 의붓아들 성폭행과 관련한 부적절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12일 곧장 방송에서 하차하게 된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 2015년 6월 파리 자택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파리=AFP 연합뉴스

전날 자신이 진행하는 프랑스 TV 토크쇼에서 유명 정치학자 올리비에 뒤아멜의 의붓아들 성폭행과 관련한 부적절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12일 곧장 방송에서 하차하게 된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 2015년 6월 파리 자택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파리=AFP 연합뉴스

‘정인이 사건’이 공분을 일으킨 한국처럼, 지금 프랑스도 뒤늦게 드러난 ‘아동 학대’ 사건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가해자인 유명 정치학자 의붓아버지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 데 이어, TV 토크쇼에서 무심코 “동의가 있었냐”고 물은 철학자까지 퇴출됐다. 더 이상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용서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TF1방송 뉴스채널 LCI는 이날 토크쇼 형식의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인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71)를 그만두게 했다. 전날 그가 출연자인 변호사 카미유 쿠슈네르(45)에게 한 질문이 문제였다. 쿠슈네르는 최근 펴낸 책 ‘라 파밀리아 그랑데’(대가족)를 통해 자신의 의붓아버지인 원로 정치학자 올리비에 뒤아멜(70)이 30여년 전 의붓아들인 자신의 쌍둥이 남동생을 여러 차례 강간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인물이다.

핑켈크로트의 질문은 “동의가 있었나” “몇 살 때 학대가 시작됐나” “모종의 호혜성이 있었나” 등이었다. 맥락상 뒤아멜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려는 차원이었다는 게 르몽드의 해석이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뒤 곧장 파장이 일었다. 아드리엥 타케트 프랑스 아동가족부 장관이 트위터 글을 통해 항의했다.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냐. 정말 10대와 가족 구성원 사이의 동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냐”고 반문했다. “모종의 호혜성이 가능함을 시사해 아이를 침묵과 죄의식에 빠뜨렸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유수 학술단체인 프랑스 한림원(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인 핑켈크로트는 유대계 철학자이자 작가다. 2019년 2월 ‘노란 조끼’ 집회 당시 극우 시위대로부터 그가 유대인 혐오 발언을 들었다는 이유로 당국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을 만큼 잘 알려진 지식인이다.

물론 쫓겨난 건 뒤아멜이 먼저다.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4일) 국립정치학연구재단(FNSP) 이사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프랑스 명문 파리정치대(시앙스포)를 감독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막강한 권한을 포기하면서다. 대신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번 사건에 대한 프랑스 대중 관심의 배경은 흔한 관음증적 요소다. 근친상간과 소아성애 등 사건 소재가 성적(性的)인 데다 얽힌 인물들이 모두 유명하다.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문화장관을 지낸 자크 뒤아멜이 부친인 가해자는 자신도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다. 쌍둥이의 친부는 ‘국경없는의사회’(MSF)를 공동 설립하고 보건, 외무장관을 역임한 베르나르 쿠슈네르(81)다. 몇 년 전 별세한 모친인 에블린 피지에 역시 저명한 여성주의 정치학자로, 두 사람과 결혼하기 전 쿠바 혁명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도 사귀었다고 한다. 여느 추문들처럼 인식되는 듯한 모양새인 이유다. 과거 운동권 좌파 지식인들의 위선도 늘 대중이 비난하기 좋은 테마다.

언론이 주목하는 건 ‘톨레랑스’(관용)의 나라인 프랑스가 더는 성폭력에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 “지금껏 ‘말썽꾸러기 난봉꾼’ 정도로 봐주고 넘어가던 프랑스 대중이 피해 커밍아웃이 잇따르자 미성년 성 학대ㆍ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동 보호 운동 시민단체 ‘위험 속 순수’(Innocent in Danger)의 설립자 호마이라 셀리에는 “강간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처벌되지 않았다”며 “프랑스에서 바뀐 건 법이 아니라 국민들”이라고 말했다. 뒤아멜한테 쏟아진 비난 세례의 유탄이 핑켈크로트에게까지 튀어간 것도 이런 기류 변화의 영향인 셈이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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