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소한 추위의 기세는 속담 속에서도 대단하다. 이를 증명하듯 소한인 지난 6일 강추위가 시작되면서 서울에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발효됐다. 바닷물까지 얼릴 만큼 강력한 북극 한파는 도심 속에선 보기 어려웠던 낯선 풍경들을 만들어냈다. 물살이 빨라 웬만해선 얼음이 잘 얼지 않는 청계천에도 ‘거대한 고드름’이 자랐고, 인공폭포 옆에선 얼음 기둥이 솟아오르는 등 기묘한 형상의 얼음이 관측됐다.
이날부터 청계천 산책길을 따라 동장군이 만들어낸 얼음 탐색을 시작했다. 강추위에 찬바람까지 강하게 불면서 인적이 끊긴 청계에선 이름 모를 새들만이 겨울 풍경에 취해 날아다녔다. 한 발 한 발 찬찬히 물가에 만들어진 얼음을 감상하다 사람을 닮은 얼음이 눈에 띄었다. 망원렌즈로 들여다보니 영락없는 사람의 생김새다. 눈, 코, 입이 붙어 있고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수초는 '이리 오라'는 반가운 손짓처럼 보였다. 이렇게 시작된 얼음 관찰은 한파가 지속된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얼음은 주로 유속이 느려지는 곡선 부분이나 나뭇가지 등 장애물 주변에 만들어졌다. 흐르는 물의 양이나 형태, 흩어지는 세기에 따라 얼음의 투명도가 제각각이었고 물방울이 얼면서 생기는 문양과 물그림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환상적인 패턴을 연출했다. 물살과 빛 등 환경에 따라 물가의 얼음덩어리들은 사람의 얼굴부터 얼룩말, 소, 늑대, 멧돼지, 오리 등 다채로운 생명체로 재탄생했다. 아, 이 얼마나 멋진 ‘겨울왕국’인가.
아쉽지만 한파가 창조해 낸 다양한 ‘생명체’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파가 꺾이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겨울 왕국을 지탱하던 얼음조각들은 한 방울의 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강추위로 손과 발이 꽁꽁 어는 것조차 잊게 만들었던 환상의 생명체들은 이제 몇 컷의 사진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오는 20일은 대한이다. '소한에 얼었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속담 대로라면 소한 같은 강추위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겨울 왕국 속 얼음 생명체를 만나기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얼음 삼매경에 빠진 지난 일주일의 시간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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