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가족·자연… 코로나 시대 소중함 더할 장욱진 화백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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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가족·자연… 코로나 시대 소중함 더할 장욱진 화백 그림들

입력
2021.01.13 16:34
수정
2021.01.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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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랑에서 13일부터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장욱진 화백의 가족도(1972). 작가가 덕소(1963~1975)에 머물면서 제작한 작품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이 강조돼 있다. 현대화랑 제공


가로 14.8㎝, 세로 7.5㎝. 손바닥만한 크기의 그림에 집이 있고, 그 안에 4명의 가족이 오밀조밀 모여 앞을 내다보고 있다. 지붕 위로는 네 마리의 새가 날고, 집 옆에는 나무가 각각 하나씩 그려져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 장욱진 화백의 1972년도 작품 ‘가족도’다.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족도는 장욱진 화백이 평소 아끼던 그림이기도 하다. 작가는 지금의 가족도와 색채, 구성, 기법이 유사한 그림을 머리맡에 걸어두고 감상했는데, 이 작품에 감동한 일본인의 간곡한 요청으로 그림을 판매했고, 1972년 아쉬워서 한 번 더 그렸다. 지금의 가족도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유다.

가족도를 비롯한 장욱진 화백의 대표작 50여점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13일부터 열린다. 현대화랑은 장욱진 화백의 30주기를 맞아 기념전인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 화백은 1990년 7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집, 가족, 자연이다. 장욱진 화백은 1941년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딸 이순경씨와 결혼해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뒀다. 1960년 서울대 미대 교수직 사임 후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는데, 아내인 이씨가 서점을 운영하며 그를 뒷바라지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엔 유독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묻어난다.

장욱진 화백의 가로수(1978). 명륜동 시기(1975~1979년) 작품은 가족의 이미지와 주변 환경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게 특징이다. 이 시기 작가는 가장의 역할을 되찾고 가족과 함께 지낸다. 현대화랑 제공


작가에게 집은 안식처이자 작업 공간이었다. 장 화백은 한적한 시골의 오래된 집을 손수 고쳐 작업실을 마련했다. 1963년 경기 남양주 덕소에 슬래브 지붕으로 된 열 평 남짓의 시멘트 집을 짓고 살았다. 한강변 언덕 바로 옆에 위치한 이 화실은 가까이에 강이 흐르고 소나무가 우거져 자연경관이 아름다웠다. 이 곳에 공장과 국도가 들어서자, 그는 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낡은 한옥을 개조해 새로운 화실을 차렸다. 그러다 1980년 봄 충북 충주 수안보에 담배 농사를 짓던 시골집을 개조해 새 화실을 마련했다. 이 곳 역시 주위 자연환경이 뛰어났다. 수안보에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1986년 봄부터는 경기 용인에 위치한 한옥에 작업실을 마련해 작업했다. 자연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덕소 시기 장욱진 화백의 모습. 작가는 새벽에 산책을 하고 화실로 돌아와 그림을 그렸다. 현대화랑 제공


김재석 현대화랑 디렉터는 “작가가 어디에 머물렀는지에 따라 달라진 작품을 보는 재미가 있다”며 “장욱진 화백의 작품 자체가 주는 따뜻함도 있어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위로가 되는 전시였음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작가가 수안보에 살던 시절엔 이전에 비해 풍경화 같은 방식으로 자연을 표현한 작품이 많다.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네이버 예매를 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다음달 28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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