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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펠로시, 질긴 악연의 최종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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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펠로시, 질긴 악연의 최종 승자는?

입력
2021.01.1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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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해 2월 워싱턴 국회의사당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 그의 연설문을 찢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해 2월 워싱턴 국회의사당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 그의 연설문을 찢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2020년 2월4일(현지시간) 오후 9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이 열린 워싱턴 하원 본회의장. 트럼프 대통령은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무시하며 등을 돌렸다. 1시간30분 후 연설을 마무리하는 트럼프 대통령 뒤로 그의 원고를 갈기갈기 찢는 펠로시 의장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국정운영 1인자와 야당 1인자인 두 사람의 살얼음판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11일(현지시간) 민주당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번째 ‘탄핵 펀치’를 날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질긴 악연도 새삼 주목 받고 있다. 두 앙숙은 4년 내내 한치도 물러섬 없이 맞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향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미친 낸시” “수치” “재앙” “고약하고 복수심 강하고 소름끼치는 인간”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수시로 내뱉으며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 소재를 두고 대립하던 지난해 4월에도 “펠로시는 급진 좌파에 의해 조종된다. 허약하고 딱한 꼭두각시”라고 조롱했다.

트럼프 입장에선 펠로시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틀어진 계기는 2019년 불거진 ‘우크라이나 스캔들’. 펠로시는 이를 빌미로 트럼프의 첫 번째 탄핵소추 발의를 밀어붙인 장본인이었다. 펠로시는 2018년 ‘드리머(Dreamerㆍ불법 이민자 부모와 함께 미국에 정착한 불법체류 청년)’를 추방하려는 트럼프에 맞서기 위해 78세의 나이에 10㎝ 하이힐을 신고 8시간 6분이나 연설하기도 했다. 임기가 9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두 번째 탄핵 추진에 나서며 트럼프의 말마따나 “베드버그(빈대)”처럼 상대를 끈질기게 물어 늘어지고 있다.

2019년 5월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38차 국가안보를 위해 순직한 공직자 추모식'에 참석한 낸시 펠로시(오른쪽) 하원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뒤를 지나가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019년 5월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38차 국가안보를 위해 순직한 공직자 추모식'에 참석한 낸시 펠로시(오른쪽) 하원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뒤를 지나가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반면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의 숱한 도발에도 특유의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했다. 2018년 12월 백악관 회동 당시에는 국경장벽 건설 예산 배정 문제로 설전을 벌이던 중, 펠로시가 트럼프를 향해 집게손가락을 흔들며 경고하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1차 탄핵 시도 때는 시사주간 타임에 “트럼프의 높은 비난 수위는 그가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협박을 당하니 나는 더 대담해지는 것 같아 좋다”고 여유까지 부렸다.

또 지난해 9월에는 트럼프가 브리핑에서 대선 불복을 시사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전 세계 독재자들을 거론하며 “민주주의를 존중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미친 낸시 발언에 대해서도 “솔직히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분노와 침착함이란 상반된 대응 방식 탓에 언론은 “80세 노장(펠로시)이 철없는 어린아이(트럼프)를 제압”하는 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하곤 한다. 실제 펠로시의 느긋한 방식이 다혈질인 트럼프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는 측면이 있다. 미 CNN방송은 펠로시의 우회적이고 냉정한 접근법을 빗대 그를 ‘그늘의 여왕’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펠로시가 트럼프에게 그의 권한이 무한이 아님을 상기시켜줬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주도권을 둘러싼 한판 승부는 펠로시의 판전승으로 끝나가는 분위기다. 펠로시는 하원의장으로 다시 신임을 받으며 2년 더 의사당을 지키게 된 반면, 트럼프는 대선에서도 지고, 의회 난동 사태의 책임까지 물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치적 입지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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