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발목 잡고 의회 무시하는 어깃장 행보
퇴임까지 열흘도 안 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판 외교 행보가 좌충우돌이다. 배려는 없다. 일부러 대선에서 자기를 이긴 후임자 조 바이든 당선인의 발목을 잡고,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은 의회를 겨냥하는 듯한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쿠바가 “국제 테러 행위를 반복적으로 지원한다”면서다. 쿠바가 콜롬비아 반군이나 미국인 도주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을 지원했다는 사실 등이 폼페이오 장관이 대표적으로 거론한 지정 사유다.
이날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공지를 통해, 예고했던 프랑스, 독일산 수입품 대상 추가 관세를 12일 0시 1분부터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ㆍ독일에서 수입해 오는 항공 부품과 와인에 각 15, 25%씩 추가 관세가 매겨진다. 미 무역대표부(USTR)은 지난해 말 추가 관세 부과 예고 당시 유럽연합(EU)에 관세 시정을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따른 맞대응 조치라고 밝혔었다.
미 국방부는 법률을 어겨 가면서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감축을 강행하려는 태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현재로선 2021년 1월 15일까지 군 규모를 2,500명으로 줄이는 감축에 영향을 주는 새 명령이 발동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아프간 주둔군을 4,500명에서 2,500명으로 이달 중순까지 감축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11월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움직임이 돌출적인 건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임기 내내 대(對)쿠바 강경 기조를 이어 왔고, ‘관세 폭탄’을 부른 미국과 EU 간 항공기 제작사 보조금 관련 분쟁도 16년 동안 지속된 갈등이다. 해외 주둔군 감축 역시 기존 개입주의 대신 고립주의를 채택한 트럼프 정부에게 생소한 동향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조치들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9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데다 하나같이 차기 행정부와 의회가 못마땅해하는 것들이란 사실이다. 쿠바의 테러지정국 지정은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정부가 내린 해제 결정을 5년 만에 뒤집은 것인데, 쿠바와의 관계 복원을 바라는 바이든 당선인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테러 지원국 지정 철회는 몇 달씩 걸리는 번거로운 일이다.
추가 관세 부과 역시 마찬가지다.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국들에게 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신호를 계속 발신 중이다.
아프간 주둔군 감축 방침은 공화당ㆍ민주당이 1일 초당적으로 가결한 국방수권법(NDAA)에 배치된다. 의회는 이 법률을 통해 2020, 2021회계연도에 아프간 주둔군을 4,000명 미만으로 줄이는 데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상ㆍ하원이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했을 정도로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법이다. 로이터는 “떠나는 트럼프 행정부가 말년까지 의회를 경멸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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