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시티’에 홍길동? 백양사 눈꽃만 해도 넘치도록 곱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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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시티’에 홍길동? 백양사 눈꽃만 해도 넘치도록 곱더라

입력
2021.01.12 17:00
수정
2021.01.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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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곱기로 이름난 장성 백양사는 설경도 빼어나다. 눈이 내리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의욕이 지나치면 속된 말로 ‘오버’하게 된다. 장성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노란색으로 단장한 건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장성군은 누런 용이 살았다는 황룡강의 전설에 착안해 ‘옐로우시티’를 지역의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황제의 색, 오방색의 중심, 부의 상징이라는 의미도 덧붙였다. 황룡강 주변을 노랗게 장식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니 결과는 더 지켜볼 일이다. 야영장과 한옥 숙박, 놀이 체험장을 갖춘 종합휴양시설 명칭이 ‘홍길동테마파크’인 것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며 생가가 장성이라는 근거를 아무리 끌어모아도, 허균이 지은 소설 속 인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장성 황룡면의 종합휴양시설 '홍길동테마파크'. 한옥 숙박시설, 야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옐로우’와 홍길동이 아니어도 장성의 저력을 알리는 유적은 수두룩하다. 우선 황룡면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필암서원이 있다. 조선 선조23년(1590) 호남 유림들이 하서 김인후(1510~1560)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때 중건하고 현종 3년(1662)에 사액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김인후는 당대 호남을 대표하는 학자다. 1531년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이황과 교우 관계를 맺고 함께 학문을 닦았으며,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기대승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543년엔 홍문관박사로 세자를 가르치는 등 여러 관직을 맡았지만, 1545년 인종이 죽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장성으로 돌아와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고향에 내려온 후로도 여러 차례 고위직에 제수됐으나 그때마다 사직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은 학자다. 필암서원은 인종이 하사한 묵죽판각을 비롯해 그의 저서인 ‘하서집’ 판각과 1,300여권의 서적, 보물 제587호인 노비보(奴婢譜)를 소장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다.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기리기 위헤 세운 필암서원. 도산서원, 무성서원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돼 있다.


장성 황룡면의 박수량백비. 38년간 공직 생활을 했지만 사후에 장례비가 없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던 박수량의 뜻을 기려 아무런 공적을 적지 않았다.


필암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백리의 대명사 박수량(1491~1554)의 묘도 있다. 그의 묘소 앞에 세운 비석에는 아무런 글도 쓰여 있지 않아 백비(白碑)라 불린다. 박수량은 38년간 공직을 역임하며 예조참판,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 재상에까지 올랐지만, 사후에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해 대사헌 윤춘년이 임금에게 아뢰어 겨우 장사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서해 바다에서 빗돌을 골라 하사했지만 자손들은 비문을 쓰면 청렴하게 살아온 그의 행적에 오히려 누가 된다며 백비를 세웠다. 생전에 “초야의 출신으로 외람되게 판서의 반열에 올랐으니 영광이 분수에 넘쳤다. 내가 죽거든 절대 시호를 청하거나 묘비를 세우지 말라”는 당부를 충실히 따른 셈이니 부전자전이다. 소나무 숲으로 소박하게 둘러진 박수량 묘소는 각지의 공무원이 체험 교육장으로 꾸준히 찾는 장소다. 하물며 고위 공직에 뜻을 둔 자들이라면 꼭 방문해 청렴의 마음을 새겨야 할 곳이다.

백양사의 상징적인 건물은 두 개천 사이에 세운 쌍계루다. 우람한 백학봉이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일품인데, 강추위에 개천이 얼어 하얀 눈만 쌓였다.

백양

백양사로 들어가는 숲길. 애기단풍과 갈참나무가 우거져 있다.

장성을 대표하는 관광지는 누가 뭐래도 백양사다. 백제 무왕 33년(632) 창건한 사찰로 정읍 내장사와 함께 최고의 단풍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단아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갖춘 명찰의 풍모는 겨울에도 변함이 없다. 백양사에 눈꽃이 피면 단풍철 못지않게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극락보전과 천왕문 등 오래된 전각이 많지만,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절간으로 들어서는 입구 개울가에 자리한 쌍계루다.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백암산 백학봉의 바위봉우리가 개울에 비치고, 산과 물그림자의 경계선에서 시선을 잡는 누각이 바로 쌍계루인 까닭이다.

아름다움에 끌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쌍계루’라는 명칭은 고려 말 대학자이자 충신인 목은 이색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목은은 '두 시냇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누각이 있어 왼쪽 물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니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아래로 서로 비치어 참으로 좋은 경치다'라고 찬탄했다. 포은 정몽주도 '쌍계루에 부쳐'라는 시에서 ‘노을빛 아득하게 저무는 산이 붉고, 달빛이 배회하는 가을 물이 정말 맑구나’라고 노래했다. 이외에도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등 이름난 학자와 문인이 고색창연한 쌍계루 위로 백학이 날아오르는 듯 아름다운 풍광을 시와 글로 남겼다.

백양사 쌍계루는 예부터 이름난 문인들이 찾아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곳이다.


백양사 경내로 이어지는 숲길. 갈참나무 가지와 비자나무에 눈이 내려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백양사에 이르는 숲길은 이미 오래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아기단풍과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도로 양편을 호위하고 있는데, 눈 내린 겨울에는 특히 갈참나무의 우람한 기둥과 가지가 돋보인다. 굵은 가지에 솜이불처럼 두툼하게 눈이 쌓이면 흑백의 선명한 대비와 조화가 한 폭의 수묵화를 펼친 듯하다.

장성=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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