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고지방 위주 식사와 운동 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간에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환자의 20% 정도는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화(섬유화)나 간암을 앓게 된다. BㆍC형 간염과 달리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간이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최근 비만 인구의 가파른 증가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환자가 급증하면서 치료제 개발이 절실해진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진행 메커니즘을 규명해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열었다.
고은희ㆍ이기업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팀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이 있는 쥐의 간세포에서 ‘스핑고미엘린 합성 효소(SMS1·sphingomyelin synthase 1)’의 발현이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간 조직에 염증과 섬유화가 나타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고 교수팀이 동물 실험으로 밝힌 스핑고미엘린 합성 효소의 역할은 사람 대상의 임상 시험에서도 재확인됐다.
공동 연구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립연구소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에서 간암으로 악화해 간이식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간 조직을 분석한 결과, 모든 환자에게서 스핑고미엘린 합성 효소 발현이 증가했다.
스핑고미엘린 합성 효소 발현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진행을 막을 단서임을 시사한 이번 연구는 영국 위장병학회가 발간하는 소화기분야 최고 권위지인 ‘거트(Gutㆍ피인용지수 19.819)’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스핑고미엘린 합성 효소는 생체막을 구성하며 필수 지방산을 공급하는 지질이다. 고 교수팀은 스핑고미엘린 합성 효소에 의해 만들어진 디아실글리세롤이 세포 죽음을 촉진하는 피케이시델타(PKC-δ) 물질과 염증 조절에 관여하는 NLRC4 인플라마좀 유전자를 순차적으로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쥐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간세포에서 강한 염증성 반응에 의한 세포사멸(피이롭토시스)이 증가하고, 간세포 밖으로 유출된 위험신호에 의해 염증 및 섬유화 반응을 유도하는 NLRP3 인플라마좀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사실도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은 단순 지방간보다 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5.7배 높고, 간경화를 동반하면 사망 위험이 10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BㆍC형 간염에 의한 간경화의 경우 항바이러스제가 존재해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특히 C형 간염은 이를 처음 발견해 치료제 개발을 이끈 의학자들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이 수여될 만큼 의학계를 비롯해 사회적인 관심이 높다.
반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경우 간 조직 내 지방 축적을 줄이거나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약물만 일부 나와 있으며, 간경화로 악화됐을 때는 간이식 외에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진행을 막을 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고은희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환자의 장기 예후를 결정하는 요인은 섬유화 진행”이라며 “이번 연구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진행 메커니즘이 밝혀짐에 따라 간경화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치료제 개발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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