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신장내과 의사들이 심도 있게 공부해야 할 과목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면역학이다. 면역학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콩팥은 이식 수술이 가장 먼저 이뤄진 장기다. 1954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쌍둥이 사이 콩팥 이식 수술에 최초로 성공했다. 콩팥을 이식받은 뒤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잘 작동하게 하려면 면역 억제제 복용을 포함해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장내과 의사의 역할이 긴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루푸스와 같은 자가 면역 질환 치료를 위해서다. 루푸스 환자의 50~60%는 ‘루푸스 신염(腎炎)’을 겪는다. 신장내과 전문의가 루푸스 신염을 치료하려면 자가 면역 질환을 포함해 면역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필자도 면역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면역은 생명체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감염성 질병에 대한 대응이라고 정의돼 있다. 면역 체계는 생명 탄생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진화하면서 더 정교해졌고, 유전자(DNA)에도 새겨져 대물림한다.
면역은 선천적인 것뿐만 아니라 후천적으로 염증이나 질병을 앓아 생긴 것, 예방 접종에 의한 것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면역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가장 주목받는 단어 중의 하나다. ‘백신의 면역 효과’나 ‘집단 면역’과 같은 어려운 개념들도 신문ㆍ방송에 자주 등장한다. 이 때문인지 “면역이 떨어진 것 같다”거나 “면역력을 높여 주는 식품을 먹어야겠다”는 말을 주고받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근거 있는 말일까. 면역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일부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당뇨병, 재생불량성 빈혈, 만성신부전, 알코올 중독 등의 질환이다. 항암 치료, 면역 억제제 등 약물 복용이나 노화도 면역을 낮추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면역을 낮춘다’는 말이 있으니, ‘올릴 수 있다’는 말도 성립할까. 애석하게도 인위적으로 면역을 확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흔히 사용되는 ‘면역력’이란 말도 출처가 확실치 않다. 면역력이란 말은 ‘면역’에 힘을 뜻하는 ‘력(力)’이 붙어 혈압처럼 오르내리는 수치로 표현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백신도 면역 체계의 극히 일부만 맡는다. 홍역 백신을 접종하면 홍역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형성해 홍역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을 때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해줄 뿐이다.
면역이 숲이라면, 백신 접종은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백신을 접종해도 면역 체계의 극히 일부만 변화될 뿐이다.
따라서 특정 음식이나 건강식품ㆍ약초 등이 면역 체계 전반을 높여 준다거나, 코로나19에 예방 효과가 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면역에 좋은 것은 전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영양 결핍은 면역에 나쁜 영향을 주므로 올바른 영양 섭취는 중요하다. 설탕, 지방, 소금을 줄이는 대신 채소ㆍ과일ㆍ통곡물 등을 고루 먹어야 영양 균형을 이루고, 미량 영양소 결핍도 막는다.
스트레스 호르몬에 오래 노출되면 면역 세포가 손상되므로 스트레스도 잘 관리해야 한다. 운동ㆍ적절한 수면ㆍ금연ㆍ절주ㆍ체중 유지ㆍ혈압 조절도 도움이 된다. 손 씻기ㆍ고기를 잘 익혀 먹기ㆍ예방접종도 면역을 돕는다.
면역은 몸의 군대와 같다. 군대가 잘 싸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선책은 건강한 생활습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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