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남성의 반바지 착용을 금지해서는 안된다는 영국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여성의 짧은 바지와 레깅스는 허용하면서 남성 복장에만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전통이라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남성의 반바지 착용을 불온시해 온 영국사회의 보수적 관행을 꼬집는 판결이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2018년 여름 랭커셔주(州) 프레스턴에 있는 부츠 관리창고의 한 남성 직원은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다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지만 회사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그는 이를 차별대우라고 여겨 맨체스터 고용재판소에 소송을 냈고 법원은 최근 직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당시 창고 온도가 ‘불편한 수준’까지 올라간 사실이 확인됐다”며 “남성 노동자에게만 반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엄연한 성차별”이라고 판시했다.
앨런 존슨 판사는 “다리를 드러내는 일은 여성에게 더 많은 재량권이 주어졌다”면서 “성별에 따라 일관된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것은 불만사항의 근거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간 영국에서는 남성의 반바지 착용이 자유롭지 않았다. 오랜 관습이라는 이유인데, 시대를 역행하는 낡은 규율에 남성 역차별이라는 불만 여론이 비등했다. 크고 작은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2017년 버킹엄셔주 에일즈베리의 한 콜센터에서는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귀가조치 당한 직원이 항의 표시로 분홍색 원피스로 갈아입고 사무실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남학생 교복을 ‘제복’으로 간주하는 문화 탓에 반바지 착용을 불허하는 학교도 많다. 그러자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를 참지 못한 학생들은 종종 ‘치마 시위’로 맞섰다. 2019년 데번주의 그레이트토링턴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여학생들과 치마와 바지를 맞바꿔 등교하는 모습이 공개되자, 학교 측은 ‘검은색이나 회색 양말을 신고’ 반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급히 교칙을 변경하기도 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에 구속력은 없지만 성별에 따른 복장 차별의 부당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줬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 법무법인 ‘애쉬포드 LLP’의 스티븐 무어 고용 책임자는 “직장에서의 복장 규정은 명확하고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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