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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알고 싶다면, 당신 자신부터 알아라

입력
2021.01.08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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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사상 첫 3000선을 돌파한 가운데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일대비 37.16포인트(1.25%) 오른 3,005.37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코스피가 사상 첫 3000선을 돌파한 가운데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일대비 37.16포인트(1.25%) 오른 3,005.37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코스피가 사상 최초 3,000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일, 주식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의 심경을 대변해 말하자면 ‘나만 시대에 뒤쳐진’ 기분이었다. 매일 성실하게 노동하고 이에 대한 대가 일부를 꾸준히 저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 앞에서는 ‘모두 트렉터로 밭을 갈 때 홀로 소로 경작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실제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왠지 뭔가 잃은 것처럼 느껴져 지금이라도 투자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았다.

물론 물리적으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심리적인 요동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합리성보다도 돈을 대하는 ‘기분’에 더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출간된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은 이처럼 부의 축적이 과학이나 숫자보다는 심리적 측면에 더 크게 영향 받는다는 점에 주목한 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10년 넘게 금융과 투자에 대해 써온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첫 책으로, 2018년 블로그에 공개했을 당시 백만 명이 넘게 읽은 동명의 보고서를 더욱 심도 깊게 파고든 것이다. 미국에서는 출간 즉시 아마존 투자 분야 서적 1위를 차지하며 2020 아마존 최고의 금융도서로 꼽혔다.

돈의 심리학

  • 모건 하우절 지음
  • 이지연 옮김
  • 인플루엔셜 발행
  • 396쪽ㆍ1만9,800원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에 ‘절대 실패하지 않는 투자비법’이 적혀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금융 성과는 운에 좌우된다”는 것을 미리 전제한다. 대신 “사람들이 빚더미에 앉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금리를 공부할 게 아니라 인간의 탐욕, 불안정성, 낙관주의의 역사를 연구해야” 하고, “하락장 바닥에서 주식을 매도한 이유를 알려면 기대 수익률에 대한 수학 공식 대신 인간의 고뇌를 알아야 한다”며 돈을 알기 전에 나 자신부터 알라는 오래된 금언을 재차 강조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사례를 가져온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세계 최대 부자 중 하나인 빌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녔던 레이크사이드 중등학교가 당시 전 세계에서 컴퓨터를 보유한 몇 안 되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이를 확률로 치환하면 100만 명 중 한 명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그러나 동시에, 빌 게이츠의 중등학교 동창이자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설립자가 될 수도 있었던 켄트 에번스는 고등학교 졸업 전 등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나이 때 산에서 숨질 확률은 대략 100만 분의 1의 불운이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가장 성공한 사업에 관한 각각 100만 분의 1의 행운과 100만 분의 1의 리스크는,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결과가 개인의 노력 말고도 여러 가지 힘에 좌우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극단적 예시다. 그리고 이 같은 예측불가능성 앞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인내와 겸손, 그리고 시간에 대한 믿음이다. 책은 “혼란을 존중”하고 “시간 보는 눈을 넓히”면서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라”며 돈 앞에서의 평정을 강조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쌓은 부에 취하지 말 것이며, 다만 내가 원할 때에 일을 그만 둘 수 있을 정도의 ‘돈으로부터의 독립’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인 모건 하우절은 돈에 관한 문제는 인간의 편향, 심리, 다시 말해 ‘돈의 심리학’과 밀접한 관련 있다고 말한다. 인플루엔셜 제공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인 모건 하우절은 돈에 관한 문제는 인간의 편향, 심리, 다시 말해 ‘돈의 심리학’과 밀접한 관련 있다고 말한다. 인플루엔셜 제공


책에 등장하는 조언은 돈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금과옥조로 삼아도 좋을 만한 것들이다. 여기에 “대학 졸업장, 교육, 배경, 경험, 연줄 등이 없는 사람이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연줄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투자”라는 저자의 신념까지 더해지면 책이 금세기 가장 뛰어난 통찰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동시에, 단지 투자 비결을 담은 금융서가 모두의 필독서가 돼야만 하는 시대가 한편으로 울적하게도 느껴진다. 이른바 ‘동학개미’라 불리는 요즘의 개인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심리 역시 주식이 마지막 ‘계층 간 사다리’가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공부하고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돌려줄 것이라는 절박한 믿음이다.

이는 곧, 주식 말고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는 분야를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은 어렵고, 시간이 흘러도 임금은 오르지 않고, 요지부동인 임금으로 뒤쫓아가기에 부동산 가격은 너무 빨리 오른다. 코스피 3,000돌파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주식 말고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한국 사회의 체념이 자리한다.

자영업자는 파산하고 실물경제는 바닥을 치는 이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호황이다. 돈을 둘러싼 괴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이런 때에, 모쪼록 가능한 많은 이들이 돈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독립에 이 책이 되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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