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으로 미국 뉴스 판도를 바꾼 그 남자

이전기사

구독이 추가 되었습니다.

구독이 취소 되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음모론'으로 미국 뉴스 판도를 바꾼 그 남자

입력
2021.01.09 04:40
0 0

<19> 왓챠 '라우디스트 보이스'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라우디스트 보이스'는 1995년 폭스 뉴스를 만든 로저 에일스가 어떻게 20년간 흔들림 없이 황제로 군림했으며, 왜 몰락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왓챠 제공


언론은 공정하고, 객관적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언론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유튜버나 블로그 등 1인 미디어만이 아니라 신문과 방송에서도 가짜 뉴스, 잘못된 정보와 사실이 보도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오로지 속보만을 위해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거나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정보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누구나 무한대의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스스로 찾고 검증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것일까.

'라우디스트 보이스'를 보면 약간 알 것 같다. 1995년 폭스 뉴스를 만든 로저 에일스. 우파의 목소리를 자처하며, 선정적이며 과격한 주장과 음모론으로 가득한 뉴스를 대세로 만들었던 인물. 폭스 뉴스는 14년 연속 케이블 뉴스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국의 뉴스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라우디스트 보이스'는 로저 에일스가 폭스 뉴스의 사장으로 취임하여 어떻게 20년간 흔들림 없이 황제로 군림했으며, 왜 몰락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선정적이며 과격한 주장과 음모론으로 가득한 폭스 뉴스는 14년 연속 케이블 뉴스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국의 뉴스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왓챠 제공


폭스 뉴스를 맡기 전 로저 에일스는 공화당의 탁월한 선거전략가였고, 실력을 인정받은 방송인이었다. CNBC가 MS와 함께 MSNBC를 만들면서 사장에서 물러난 로저 에일스는 바로 루퍼트 머독이 시작하는 폭스 뉴스로 옮겨간다. 원래는 사임하며 바로 동종업계에서 일하지 못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에일스는 교묘하게 회장을 속이며 계약서 조항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에일스는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협박하는 등 기만과 협잡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인물이다.

로저 에일스는 새로운 스타일의 뉴스 프로그램을 원했다. 일종의 타블로이드 TV다. 공정함이나 객관성 같은 것은 애초에 관심 없다. “세상에는 뭘 믿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진보 미디어가 사람들을 비틀어놨지. 더는 누가 선인지도 몰라. 그 사람들한테 생각을 강요하면 안 돼. 하지만 감정을 유도하면 그들은 자네 거야.” 에일스의 목표는 열정적인 소수의 충성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었다. 지식인, 월가와 IT업계에서 일하는 엘리트가 아니라 소위 ‘보통 사람’들을 사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엘리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이용하여 대중이 공감하며 열광하는 뉴스 방송을 만든 것이다.

로저 에일스는 엘리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이용하여 대중이 공감하며 열광하는 뉴스 방송을 만들었다. 왓챠 제공


공정, 책임, 진실 등 언론의 기본을 말하면 로저 에일스는 단호하게 답한다. “각본을 써서라도, 내 편을 만들기 위한 말을 해야지. 그들은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야, 기분을 원하는 거지.” 토론 프로그램에서 게스트가 할 말을 미리 써주고, 시청자가 좋아할 과격한 말을 일부러 던지면서 시청자가 호응하게 만든다. 2001년 9.11 테러를 보도하면서 에일스는 고층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내보내라고 지시한다. 다른 방송사에서 내보내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선을 넘지 말자는 조언에 에일스는 “선이란 건 겁쟁이나 지키는 거야”라고 답한다. 시청자를 놀라게 하고, 시선을 끌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얼마나 참혹하건, 어떤 거짓말이건 상관없었다.

로저 에일스는 전통적인 언론인, 방송인이 아니었다. 그는 선동가이고, 대중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뉴스를 따라다니지 않아. 뉴스를 만들지.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거야.” 9.11 후, 이라크를 지목하면서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폭스 뉴스는 사실처럼 보도한다. 의혹이 나오고, 의혹을 사실처럼 계속 보도하면, 의혹을 기반으로 실제 행동이 이루어진다. 부시 정부와 폭스 뉴스의 합작은 성공적이었다.

에일스는 도널드 트럼프가 주목받을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했다. 에일스는 자신이 트럼프를 제대로 만들어주었고, 결국 공화당 후보로 끌어 올렸다고 믿는다. 왓챠 제공


2008년 민주당에서 버락 오바마를 후보로 뽑자, 로저 에일스는 악랄하게 공격을 가한다. 아프리카인, 무슬림, 사회주의자 등으로 오바마를 지칭하며 중간 이름인 ‘후세인’을 반드시 붙인다. 오바마가 당선된 후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에이콘이라는 단체가 있다. 단체에 대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낸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토크쇼에서 떠들어댄다. “1루에서 에이콘 문제를 다뤄, 그러면 2루에서는 다들 그 이야기를 하게 되지. 3루에 가면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지도 시작해. 다들 관심이 있으니 사실이든 아니든 다룰 수밖에 없지.” 그렇게 되자 결국 의회에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금을 삭감해버린다. “이기려면 골수 지지층을 유지해야 해. 계속 붙들어 둬야지. 간단한 논지를 잡아서 그걸 계속 반복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그 주장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친숙한 사실이 되지.” 반복되면 사람들은 믿어버린다. 가짜 뉴스가 어떻게 영향력을 갖게 되는지 그 과정이다.

로저 에일스는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가진 선동꾼이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한다. 폭스 뉴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루퍼트 머독조차도 그를 통제하기는 힘들다.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루퍼트의 아들이 에일스와 대립했을 때에도, 머독은 결국 에일스의 손을 들어준다. 시청률 1위를 달리는 회사의 사장을 해고할 수는 없었다. 철저한 장사꾼인 머독은 대세를 따라 움직이지만, 에일스는 다르다. 그는 공화당원이고,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여섬혐오자이다. 폭스 뉴스를 장악하며, 뉴스 업계의 판도를 바꾼 에일스는 자신을 구원자, 예지자로 생각하며 점점 자기도취에 빠지든다.

로저 에일스는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가진 선동꾼이었다. 왓챠 제공


오바마가 재선이 되자 에일스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자신이 직접 공화당 후보를 고르겠다고 말한다. 주목한 이는 도널드 트럼프였다. 공화당에서, 주변 모두가 트럼프는 관심을 끌기 위해 후보 출마를 한 것이고, 판을 달구는 역할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에일스는 달랐다. 트럼프는 대중의 관심을 끌고 인기를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주목받을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했다. 에일스는 자신이 트럼프를 제대로 만들어주었고, 결국 공화당 후보로 끌어올렸다고 믿는다. ‘나는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에일스는 자신했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을 분열과 분노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최악의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에일스는 이미 몰락했다. 정치적으로 파산한 것이 아니고 성희롱과 성추행으로 폭스 뉴스에서 물러나고 고소를 당했다. 거짓말과 조작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을 폭행하고 이용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다.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지금 여성 이슈는 가장 정치적이기도 하다. 사적인 범죄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한 에일스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선 자체를 무시하며, 폭스 뉴스를 통해 분노와 분열을 조장한 사람이다.

러셀 크로우(왼쪽)는 실존인물인 로저 에일스(오른쪽)를 탁월하게 연기하며 그가 혐오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왜 폭스 뉴스의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 알수 있게 만든다. 왓챠 제공


'라우디스트 보이스'는 로저 에일스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서 언론의 역할, 책임에 대해 역설한다. 성폭력으로 고발당했을 때도, 에일스는 “모든 것이 좌파의 선동이고 음모”라고 떠들어댄다. 그는 거짓과 음모로 사실을 조작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인간이기에 무엇도 믿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숭배했다. 거짓을 반복하면서 자신도 정말로 믿게 된다. '라우디스트 보이스'는 지금 한국 언론 업계의 상황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러셀 크로우가 탁월하게 연기하는 로저 에일스는 너무나 혐오스럽고, 그러면서도 그가 왜 폭스 뉴스의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처한 지독한 현실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김봉석 윤이나의 정기구독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