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법, 기사들 처우 개선 담았지만
과로사 원인 까대기 책임조항 모호
"까대기 부담만 없어도 일하다가 쓰러지는 택배기사들이 확 줄어들 겁니다."
택배기사들은 과로사 방지를 위한 해법으로 분류작업과 배송작업의 분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을 택배기사 업무에서 완전히 제외해달라는 것이다. 까대기는 물량이 많지 않아 작업 시간이 한두 시간에 불과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업계의 큰 이슈가 아니었지만, 택배수요가 급증해 까대기에만 5~6시간이 걸리면서 택배기사 과로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쟁점은 분류작업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지 분류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여부다. 택배업체들은 그 동안의 관행과 판례를 근거로 택배종사자 몫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물량이 적었던 과거와는 사업환경이 달라졌으므로 업체에서 해결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택배기사들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물법)'도 실질적으론 기사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생물법의 골자는 택배업을 등록제로 바꾸고 지원 근거를 마련해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택배 사업자에게 택배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도록 의무화하고 표준계약서 도입, 갱신청구권 6년 보장 등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생물법에 까대기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히 포함되지 않은 점은 한계로 꼽힌다. 지난해 6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생물법 원안에는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에서 분류작업을 명확히 제외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수정안에서 빠졌다.
물론 수정안이 '택배서비스 종사자'를 '화물의 집화, 배송 등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분류작업이 제외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집화, 배송 등'의 '등'에 분류작업이 포함된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어, 법이 통과되더라도 '등'의 의미를 놓고 택배 현장에서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는 표준계약서에 분류작업에 대한 사측 책임을 명시하는 방법으로 생물법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노사정이 참여해 지난해 12월 출범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이 문제를 논의 중이지만, 종사자(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와 사업자(통합물류협회) 사이의 이견이 팽팽하다.
과로사대책위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물류협회가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회의(2020년 12월 15일)때 '분류작업은 택배업체의 업무이고 현장 여건에 따라 택배기사가 분류업무까지 수행할 경우 대가를 지급하고 표준계약서에 명기한다'고 합의해놓고 2차 회의(12월 29일) 때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물류협회 측은 "1차 회의에서 이해당사자 의견을 듣고 앞으로 협의를 하자고 한 것이지 합의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대해 "분류작업은 택배회사의 업무라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사업자 측에선 원가상승에 따른 택배가격 인상 논의가 전제돼야 분류작업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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