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죽을 만큼 가치 있는 걸까?”
삶이 공허해질 때면 누구나 하는 질문, '왜 사는 걸까.' 디즈니ㆍ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소울’(20일 개봉·전체관람가)은 태어나기 전 영혼의 입을 빌어 '죽을 만큼'이라는 표현을 더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걸까. 대단한 목표가 있어야 죽음을 각오하고 살 만한 걸까.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계속 행복할까. 어린이용 영화라고 하기엔 질문이 꽤 거창한데 그래서인지 ‘소울’은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보인다.
‘인사이드 아웃’(2015)에서 마음 속의 다양한 감정을 의인화하는 상상력을 펼쳐보였던 피트 닥터 감독이 이번에 주목한 건 '성격'이다. 어린 딸의 갑작스런 감정 변화를 보며 전작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처럼, '소울'도 두 자녀가 왜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다를까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생전세계’도 있겠지. 감독의 상상력은 이렇게 이어졌다.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가 갑자기 떨어진 곳이 바로 그 ‘태어나기 전 세상’이다. 재즈 연주자가 꿈인 조는 오디션 낙방을 거듭한 끝에 중학교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던 그는 옛 제자이자 재즈 드러머인 컬리의 도움으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는다. 바로 최고의 재즈 뮤지션인 도로시아 윌리엄스와의 협연. 꿈에 부풀어 있던 조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돼 낯선 곳으로 떨어진다.
‘머나먼 저 세상’으로 갈 뻔한 조가 도달한 ‘태어나기 전 세상’은 탄생 전 영혼들이 머무는 장소다. 아기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삶의 동기를 부여할 '불꽃'을 찾는 교육의 공간이기도 하다. 조는 여기서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22는 간디, 테레사 수녀, 링컨도 포기한 회의주의자. 조는 육체를 떠나 유영하는 영혼 문윈드의 도움으로 22와 함께 지구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몸으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한바탕 소동을 치른다.
잠시나마 인간의 몸을 갖게 된 22는 오히려 조의 멘토가 된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불꽃을 태울 만한 관심사나 원대한 목표가 없더라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피자 한 조각의 달콤함, 푸른 하늘을 보며 뉴욕 거리를 걷는 즐거움, 가족과의 소소한 추억만으로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준다.
‘소울’은 감독의 전작인 ‘업’과 ‘인사이드 아웃’을 엮어놓은 작품 같다. 감정이나 성격, 열정 등 인간 존재를 형성하는 요소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인사이드 아웃’을 잇고, 삶의 의미를 묻는다는 측면에선 ‘업’을 닮았다. ‘인사이드 아웃’처럼 귀여운 영혼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태어나기 전 세상’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며 동물의 몸에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는 코믹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긴 어렵다.
‘소울’은 디즈니 내부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백인 캐릭터 일색이었던 디즈니 역사상 최초로 흑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캐릭터가 흑인이다. 미국 흑인 문화가 낳은 최고의 유산 중 하나인 재즈도 전면에 배치했다. 작화 방식의 변화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전 작품들이 만화적 묘사에 가까웠던 반면 ‘소울’은 미국 뉴욕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픽사는 이렇게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혀가며 디즈니의 보수적 세계관까지 바꿔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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