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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문재인정권은 실패했고, 진보는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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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문재인정권은 실패했고, 진보는 몰락했다"

입력
2021.01.06 20:00
수정
2021.01.06 20:1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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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2019년 11월 첫 인터뷰 때만해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주 망설였다. 조국 사태를 비판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음 한구석, 정부 여당이 달라질 수 있을 거란 일말의 기대가 남아 있었기에. 그러나 1년여 만에 다시 만난 진 전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실패했고, 진보는 몰락했다”고 단호하게 못박았다. 민주당 진영이 진보의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 도덕성, 개혁 과제에서 모두 후퇴했다고 비판하면서다. 진 전 교수는 “한국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선 기성 정당이 아니라 시민들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어나갈 새로운 서사의 핵심으로 ‘시민적 정체성’을 획득하자는 제안과 함께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서울 성산동 진 전 교수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조국 사태 이후 본보와의 인터뷰(2019년 11월 20일자)가 정치적 발언의 시작이었다. 1년 사이 제1야당을 대체하는, 반문 진영의 좌장이 됐다.

“처음엔 문재인 대통령은 다르다,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586 운동권이 문제라고 봤다. 그런데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조국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하는 걸 듣는 순간, ‘같은 부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1년 동안 몸무게도 빠지고, 많이 힘들었다. 옛날 같으면 싸움을 즐기면서 했을 텐데 이번엔 굉장히 외로웠다. 같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지적 수준과 도덕적 수준이 이 정도인가, 너무 한심해서 충격이 컸다.”

-진보 진영에 속한 ‘같은 부류’이지 않았나. 그땐 몰랐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달랐던 것 같다. 군부독재랑 싸울 때, 같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86 운동권 세력은 자유민주주의자가 결코 아녔다. 그들은 전체주의적이다. 지금도 봐라. ‘선출된 권력의 힘’을 늘 강조하는데, 선출된 권력이라 해서 법과 절차를 무너뜨리고 모든 걸 다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히틀러도 선출된 권력이었으니 정당하다고 할거냐. 여권에서 사법부를 공격하며 민주주의 시스템을 흔드는 것 역시 굉장히 위험한 신호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의 사고 방식이 결코 아니다. 혁명기 정서에 불과하다.”

-민주당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건가.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당은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민주주의 수준을 87년 체제 이전으로 돌려버렸다. 운동권 세력은 오로지 ‘선출된 권력’으로만 민주주의를 이해한다. 군부독재에 맞선 직선제 민주주의. 그들의 인식은 딱 거기에 머물러 있다.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전두환하고 뭐가 다르냐. 그런 점에서 문재인정권은 완전히 실패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 처음엔 ‘다를 거라 믿었다’고 했는데.

“대통령은 586 운동권 세력처럼 혁명론에 물든 분은 아니다. 문제는 대통령이 운동권 세력들에 얹혀있다는 거다. 조국, 윤미향 사태 때 대통령이 윤리적 판단 기능을 내려주지 못하고 계속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 대통령은 없다. 원래 정치하기 싫어했던 분을 억지로 옹립한 거 아니냐. 대통령이 마리오네트 역할 밖에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 끝났어야 할 분이다. 그걸 본인도 원하지 않았나. 비서실장으로 끝났으면 행복했을 사람, 국민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 그런 사람이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한국일보에서 연재한 ‘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를 묶은 책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가 지난 연말 나왔다. 제목 그대로, 진보가 몰락했다고 보나.

“몰락은 이미 확정됐다. 민주당이 표방하는 에토스(Ethosㆍ어떤 시대나 집단의 지배적 의식)가 다 무너졌다. 조국, 윤미향, 원전 사태 등을 보고 있자면 보수보다 더 썩었다. 보수는 최소한 부패를 저지르면 인정했고 사과했고 반성은 안 하더라도 반성하는 척은 했는데, 진보는 그마저도 없다. 불의를 정의라고 강변하고 잘못된 건 언론, 검찰, 감사원, 사법부라고 전도된 세계관을 펼치고 있다. 이 정부가 늘 개혁과제를 내세우는 것도, 자신들은 여전히 개혁의 투사고 세상이 잘못됐고, 세상을 바꿔놔야 한다는 논리에서 나온 거다. 무너진 도덕을 정당화 하느라, 윤리와 정의의 기준마저 다 뒤집어 버리며 ‘로고스(Logosㆍ보편적인 법칙에 따르는 분별과 이성)’도 해체했다. 당장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만 봐도 그렇다. 진보 정권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물이지만, 임명을 강행하지 않나. 본인들이 욕하던 보수 진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왔다는 걸 모르고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가 현실이 드러난 거다. 진보의 도덕 기준을 크게 후퇴시켰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인 만큼 개혁 과제에 대한 기대도 높았는데.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을 정책이 아니라 정치로, 전술로 만든다는 거다. 모든 걸 선거랑 연결시키니,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지지자들이 열광하면 승리했다고 착각한다. 개혁 정책은 의도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야당과 협의하고 토론하는 게 의회 민주주의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책마저도 적에게 강요하고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3법 할 때도 국회에서 토론 한번 거치지 않았다. 공수처는 당론으로 정해놓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당론이 아니다. 서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정책에만 몰두하거나, 정책을 건드려도 굉장히 미숙한 이유가 정책을 정치와 선거로 연결시켜서 그렇다.”

-보수 진영은 희망이 있나.

“안 될 가능성 6, 잘 될 가능성 4라고 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많이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나. 초선들도 움직이고. 문제는 허리 역할인 중진 의원들 중 개혁세력이 아직 안 보인다는 거다. 국민의힘이 국민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생각만 들게 해도 상황은 달라질 거라고 보지만, 아직은 잘 안 될 거라는 부정적 전망이 더 강하다. 보수와 진보 모두 엘리트가 사라진 느낌이다. 충성심 하나로, 개싸움 잘했다고 의원 만들어 주는 여의도 아니냐. 말 잘 듣는 사람들만 뽑히니 인물이 없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장혜영, 류호정 의원 말고는 나머지 의원들 이름도 모르겠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앞으로 진보의 재구성을 고민하겠다고 했는데.

“진보란 이름과 개념을 민주당이 더럽히고 오염시켰다. 이제 진보는 위선과 동의어가 되지 않았나. 한국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선, 정의당도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진보해야 한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던 두 개의 위대한 서사가 무너졌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여전히 썩은 정체성을 부여 잡고 있다.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을 보면서 그나마 우리가 낫지 않느냐고 강변하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끌어내리고 있다. 비교 대상을 바꿔줘야 한다. 진보가 원래 하려던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해주려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인가.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기성 정당과 동일시 한다. 그런데 그 두 정당의 정체성은 이미 낡았고 썩어 버렸다. 결국 시민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그려 나가는 게 필요하다. 우리는 더 이상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민주 혁명 열사도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동체 성원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오바마가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애국자도 있고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다고 했다. 나라를 생각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너희는 무조건 없어져 버리라는 식으로 계속 가선 곤란하다. 좌파고 우파고 중요한 건 국가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를 누가 더 성공적으로 수행하느냐를 두고 경쟁하는 거다. 공정이 무너졌고 통합이 사라졌다. 고령화, 인구감소 등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이슈도 많다. 그걸 두고 맞붙어야 한다.”

-올해 대선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선이 있다. 제도권 정치에서 역할을 할 생각이 있나.

“선거에서 필요한 후보로부터 도움 요청이 오면 지원에 나설 순 있겠지만, 정치권에 들어가서 뭘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앞으로도 프레임 싸움을 계속 할 거다. 모두가 무조건 옳다고 우길 때, 아니라고 말해주며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한 사람으로 남는 게 목표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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