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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를 건 도박

입력
2021.01.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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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 사이로 서울 도심 아파트에 햇살이 비치고 있다. 노후까지 건 부동산 베팅은 어떤 결말로 나타날까. 뉴스1

먹구름 사이로 서울 도심 아파트에 햇살이 비치고 있다. 노후까지 건 부동산 베팅은 어떤 결말로 나타날까. 뉴스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라는 오명을 듣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4%(2017년 기준)다. 자산은 빼고 소득만 따진다는 과장 논란도 일부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4명 이상은 매달 현금수입이 전체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친다.

OECD 평균(14.8%)의 3배나 되는 빈곤의 배경에는 연금의 부재가 있다. “선진국보다 짧은 연금제도의 역사 탓에, 당장 생활비를 해결해 줄 연금 가입률이 지금 70, 80대 노인층에서는 절대 부족하다”는 게 주된 분석이다.

그래서일까. 예금 금리가 1%도 안 되는 요즘엔 10억원을 들고 은퇴하는 사람보다, 월 100만원이라도 연금을 확보해 둔 사람이 훨씬 부러움을 산다. “국민연금 출범(1988년) 이후 세대가 노인이 되면 노인빈곤율은 크게 낮아질 것”이란 전망, “하루라도 빨리 연금에 가입하라”는 조언이 쏟아지는 것도 다가올 장수ㆍ고령화 시대 연금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서, 2019년 퇴직연금 중도인출자의 절반(52.5%)은 연금을 깬 이유로 ‘부동산’을 들었다.

퇴직연금은 노후 대비용이어서 중도인출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다. 오래 아프거나(장기 요양), 파산을 했거나, 천재지변을 당해야만 노후자금 준비를 포기(중도인출)할 수 있다. 웬일인지 그 사유에는 부동산도 들어 있는데, 절반 넘는 사람이 주택 구매나 전월세금 마련을 위해 노후 대비를 포기했다는 의미다.

특히 20대에서는 주거임차, 30대는 주택구입을 이유로 든 사람이 가장 많았다. 젊은층의 이른바 ‘부동산 영끌’ 흔적이다. 쥐꼬리 수익률로 퇴직연금을 굴리느니, 당장 아파트에 투자하는 게 미래를 위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부동산은 이들의 노후까지 책임질까. 모르겠다. 다만 과거 20, 30년과 향후 20, 30년 한국의 부동산 가격 경로가 비슷할 지에는 불확실성이 크다. 경제발전 단계, 인구구성, 가치관 등 집값을 좌우할 요인이 과거와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

영끌로 받은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갚는 사이, 다른 자산을 불릴 기회는 그만큼 제한될 거다. 설사 수십년 후 지금보다 값이 오른 집 한 채를 가진들, 현금 여유가 없는 집주인의 노후가 여유롭기 어렵다.

버블 세븐 광풍 속에 다투어 빚을 냈던 집주인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예상 못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갑자기 ‘하우스 푸어’가 됐다. 뚝 떨어진 집값에 이자 부담까지 커지자 집을 내놓았는데, 사겠다는 사람조차 없어 결국 파산을 신청했다. 10년도 안 된 일인데, 요즘은 다시 안 올 일처럼 잊은 듯하다.

2021년의 집값 전망도 죄다 상승에 기울어 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늘어날 기미가 없다고 한다. 정부의 땜질식 규제 확대가 거듭된 결과, 이제 전국민의 70%가 규제지역에 산다. 모두가 받는 규제는 더 이상 규제가 아니기에, 최근엔 다시 서울 집값이 꿈틀대고 있다.

이 추세라면 올해도 많은 젊은이가 현재(부동산)와 미래(노후자금)를 맞바꾸는 영끌 도박에 나설 것이다. 베팅의 결과와 무관하게, 이들의 ‘정석적인’ 인생 설계는 이미 엉클어졌다.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면서 결국엔 부동산 도박장을 개설한 지금의 정부는 훗날 어떤 변명을 할까.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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