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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음미하라

입력
2021.01.0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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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진
황상진논설실장


코로나 극복의 희망 현실화할 신축년
분열 아닌 상생ㆍ통합의 리더십 절실
‘우리는 한몸’, 상대 존중 자세 보여야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국무위원, 청와대 비서진들과 현충탑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국무위원, 청와대 비서진들과 현충탑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신축년(辛丑年) 새해는 코로나에 일격을 당한 지난해와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신 효능의 위력은 커질 것이고, 변이를 거듭하는 코로나의 저항에도 승리의 여신 니케는 결국 인류 편에 설 것이다. 난관도 있겠지만 시간이 문제일 뿐, 인류의 과학 기술력은 극복할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인류가 치를 희생이 가슴 아프다. 수십, 수백 만명이 목숨을 잃거나 병마와 싸워야 하고, 그나마 무사한 이들도 사회적 단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의 운명도 인류가 헤쳐 나갈 이런 과정과 다르지 않다. 2월부터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 코로나 극복의 싹이 돋아날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션 결과처럼 가을쯤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을 거라는 예측이 구체화할수록 당장의 고통과 불안을 참고 이겨 내려는 의지는 단단해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의 터널에 갇힌 상황은 당분간 그대로다. 이 암연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때까지, 또는 그 이후에도 고초를 겪어야 할 민초들의 모습은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프다. 어떤 이는 가족 생계가 걸린 가게 문을 닫거나 일자리를 잃고, 어떤 이는 쪽방에 갇혀 있다. 젊은이들은 더 암울해진 미래, 서민들은 위기 속에 폭등한 집값ㆍ전셋값에 절망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는 이들의 참담한 현실은 또 어떤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통합의 리더십이다. 위기에 맞서려면 대립과 갈등, 분열이 아니라 모두의 이해와 협력, 단합을 이끌어 내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겐 그런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고통의 터널에 갇힌 민초들까지 좌우 양쪽 진영으로 쪼개고 서로를 향해 비수를 날리게 하는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손 잡고 함께 가자고 해도 모자랄 판에 근거조차 희미한 도덕적 우월성에 사로잡혀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 태도만 넘쳐나니 갈등과 반목만 팽배하다. ‘통합’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수사(修辭)일 뿐, 실상은 자기 진영 밖에 보지 않는 분열의 리더십만 횡행한다. 거대 권력을 쥔 쪽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삼권분립 정신까지 무시하며 흔들어 댈만큼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 툭 하면 입법 권력의 힘을 과시하거나 ‘좌표 찍기’로 진영 내 존재감을 뽐내는 이들만 도드라진다. 반대 쪽은 진영 확장을 위한 그릇 키우기는커녕 여전히 방향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목청만 높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우리는 조국-윤석열-추미애를 중심에 놓고 격렬히 대립했던 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적대와 증오, 반목과 불신의 폭력적 언어만 난무하는 분열의 해를 보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4월 서울ㆍ부산 시장 보궐선거, 내년 대선을 향한 본격 레이스가 그 난장(亂場)을 예고한다.

두 해 전,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뽑혔다. ‘한 몸에 머리가 둘인 새’의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간 모두 죽고 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보 보수의 진영을 넘어 여야가 사생결단식 대립을 멈추고 상생과 협치로 통합을 이루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1년 뒤의 평가는 ‘아시타비’, 그야말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은 채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에 대한 질타였다. 새해 벽두 다시 한번 ‘공명지조’를 떠올리며 정치권이 그 뜻을 되새겨 보기를 권한다. 신축년이 다 가도록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비판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호질기의(護疾忌醫)’(2008년)의 태도를 고수한다면 그 대가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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